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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팔대산인(八大山人)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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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청(淸) 초기 활동한 화가로 중국뿐만이 아니라 한국 일본에서 사랑받는 화가가 팔대산인(八大山人)이다. 생존시에는 미친 화승(狂畵僧)으로 알려진 그의 그림 값이 최근 중국 화가의 그림으로는 최고가를 기록한 적이 있다. 그는 황족의 신분으로 세상이 좋았다면 순조롭게 출세하고 그림은 그리지 않았을런지 모른다.

그가 19세 때였다. 청의 대군은 산하이관(山海關)에 집결했다. 산해관을 지키는 사령관은 오삼계(吳三桂)장군이었다. 수도 베이징에서는 농민반란군 이자성(李自成)군이 입성 명(明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승산이 없음을 알고 황실 후원 경산에서 목 매달아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오삼계는 시국에 편성 이자성을 지지하였으나 그의 부하가 베이징의 오장군 본가에 난입 애첩 진원원(陳圓圓)을 능욕하였다. 오장군은 이에 불만을 품고 청에 귀순 산해관의 성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오삼계의 배신으로 청군이 베이징을 점령하자 강남(江南)에 흩어져 있던 명의 황족들은 임시정부(南明)를 세워 청군에 대항하였다. 장시성(江西省) 난창(南昌)에 살던 명태조 주원장(朱元璋)의 16남 영헌왕 주권(寧獻王 朱權)의 후손들도 난국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주권의 9세손인 주탑(朱?)(1626-1705)은 머리가 비상하여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지만 청군의 강남침공으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가족은 청군을 피해 산으로 도망 뿔뿔히 흩어졌다.

주탑은 청조가 강요하는 변발을 피하기 위해 출가하여 선사(禪寺)의 스님이 되었다. 그의 나이 26세 때였다. 그는 그림을 그렸다. 만주족 지배에 망국파가(亡國破家)에 대한 울분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싶었다. 그가 그린 물고기는 모두 백안(白眼)이고 새(鳥)는 외다리이다. 백안의 물고기는 청조를 백안시한다는 의미이고 외다리 새는 나라를 잃어 슬픈 불구의 새의 모습을 보여 준 것이라 한다.
팔대산인(八大山人)이란 호(號)도 청조에 대한 깊은 원한과 증오가 배여 있다. 그의 그림에 세로로 쓴 팔대산인의 4글자는 파자(破字)되어 곡지(哭之)

또는 소지(笑之)처럼 보인다. 이는 오랑캐 만주족이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이 기막힌 운명이 통곡할 노릇이고 또 동북의 야만족이 한족(漢族)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 웃기는 일이라고 것이다. 그는 차라리 벙어리가 되고 싶어 집에다 “아(啞)”자를 붙여 놓고 두문불출하였다고 한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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