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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벤처는 '악어와 악어새'

중앙일보

입력

'정현준 게이트' 의 불길이 정치권으로 옮겨 붙고 있다. 벤처기업이 정치인들에게 뒷돈을 대주고, 정치권은 벤처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유착설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또 벤처기업과 정치인을 연결시켜주는 이른바 '디지털 브로커' 들의 존재까지 드러나 벤처시장이 지금처럼 왜곡된 데는 정치권의 입김도 적지 않게 작용한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악어와 악어새=얼마 전 각종 M&A로 A사의 주가가 급등할 무렵 李모 사장은 '의원 보좌관' 이라는 사람들로부터 여러통의 전화를 받았다.

李사장은 "구체적으로 말은 안했지만 주식을 바라는 눈치여서 전화를 끊었다" 고 말했다. 그는 "일부 업체는 이렇게 접근하는 정.관계 인사에게 주식을 줬다는 소문도 있다" 고 말했다.

인터넷 기업인 E사의 李모 사장은 "여권의 실세 정치인과 줄을 대고 있다는 브로커들로부터 최근까지 매달 한두차례 연락을 받았다" 고 털어놓았다.

그는 "고민하다가 주식은 주지 않고 브로커나 정치인 보좌관을 만날 때마다 1백만坪?넘는 술 대접으로 인사치레를 했더니 조용히 넘어갔다" 고 말했다.

금융사이트를 운영 중인 B사의 金모 사장은 "올해 초 S대 선배라는 브로커가 '실세 정치인 중 동문 의원들과 만나보라' 고 해 불려 나갔다가 '액면가 이하로 주식을 달라' 고 부탁해 거절하느라 진땀을 뺐다" 고 말했다.

C사의 吳모 사장은 브로커의 연락이 몰리면 아예 해외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벤처기업이 사업권을 따내거나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권을 먼저 찾는 일도 있다. 특히 일부 벤처들 사이에는 정.관계 유력인사를 등에 없지 않으면 빨리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유력 인사의 친인척이나 자녀들을 회사로 영입하기도 한다. '갑' 사는 '○○○라인' , '을' 사는 '○○○빽' 등의 말이 나돌 정도라고 한다.

통신장비 업체인 D사는 올해 초 정치권을 동원해 대기업 H사의 인터넷 공개 입찰에서 사업을 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장이었던 金모씨가 여권 정치인들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데다 회사 임원 중 한 사람이 실세 정치인의 동생이라는 말들이 많았다.

◇ 활개치는 브로커=코스닥 시장의 활황으로 신흥 재벌이 된 젊은 벤처인들과 정치인들 사이의 커넥션을 만들어주는 디지털 브로커는 지난 총선을 앞두고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테헤란로에서 활동 중인 크고 작은 브로커는 1백여명에 이르며, 이들은 크게 ▶금융▶벤처▶동문 등 세 부류로 나뉜다.

주류인 금융권 브로커들은 증권.금고업종 출신으로, 대주주에게 접근한 뒤 탈법적인 증자나 펀딩을 지원하면서 액면가 이하 또는 공짜로 주식을 받아 정치권 등에 넘겨준다는 것. 특히 작전매매.시세조종 등으로 주가를 튀긴 뒤 차익을 벤처.정치권.브로커가 나눠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역삼역 인근에서 일하는 브로커 朴모 실장은 "정치권과의 거래는 가.차명 계좌로 이뤄지고, 다른 상장사의 전환사채 발행 등을 통해 세탁된다" 고 밝혔다.

이밖에 벤처 경영진이나 임직원들이 주변 업체들을 정치권에 중개하는 벤처권 브로커나, 출신 대학별로 사람들을 이어주는 동문 브로커 등은 특정 인맥을 동원하기 때문에 더욱 은밀하다.

◇ 풀리지 않는 의혹=벤처와 정치권의 유착설은 지난해부터 심심치 않게 거론됐으나 속 시원히 풀린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난해 주가 조작 의혹을 받았던 골드뱅크와 현재 입장권 전산망 사업을 추진 중인 티켓링크가 대표적인 사례다.

골드뱅크는 지난해 초 작전 매매를 통해 주가를 한달 만에 5배나 끌어올린 혐의로 증권거래소에 적발됐으나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회사 대표와 권력층간의 검은 커넥션 소문이 무성했다. 문화관광부로부터 공연장 전산망 표준화 사업권을 단독으로 따낸 티켓링크도 최근 특혜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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