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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내의 보내기 무산 소동…누가 맞나]

중앙일보

입력

북한에 보내려던 겨울 내의 문제를 놓고 전경련과 태창, 니트연합회는 조금씩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전경련은 겨울 내의 지원 방안을 검토한 것은 인정하지만, 태창에 이를 만들도록 요청하거나 서면계약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 발단〓㈜태창이 올 초 독자적으로 북한 당국과 2천만벌의 내의를 북한 당국에 보내기로 합의하면서 비롯됐다. 올해는 9월 말과 10월 말 두차례에 걸쳐 5백만벌씩 모두 1천만벌을 보내기로 했다.

태창은 이 합의서를 토대로 남북협력사업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대북 창구를 맡는 정부기관과 접촉했으며 지난 4월부터 하청업체를 통해 내의를 만들었다.

오병권 ㈜태창 감사는 "대북사업이라 민감한 부분을 얘기할 수 없지만 계약서에 준하는 언질을 받았기 때문에 추진한 것" 이라고 주장했다.

◇ 추진 과정〓전경련은 지난 9월 1일 롯데호텔에서 열린 삼성.현대.SK.LG 등 4대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정례회의에서 겨울내의 지원과 관련해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은 전경련 형동우(邢東宇)상무를 배석시켜 내의 지원 방안을 설명하도록 했다.

니트연합회 관계자는 "이날 회의가 끝난 직후 邢상무가 내의 지원 사업에 들어갈 재원 6백억원을 4대 그룹이 분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고 전했다.

북한에 보내질 내의는 성인남녀와 어린용 등 세가지로 평균 생산단가는 한벌에 6천원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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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은 邢상무를 내세워 내의 지원 사업을 추진했다.

邢상무는 8월 24일 태창.쌍방울.전방군제.BYC 등 4개 내의업체 담당 임원을 전경련회관으로 불러 "10월말까지 내의 1천만벌을 보내야 하므로 시일이 촉박하다" 며 "내의 샘플을 빨리 보내달라" 고 말했다.

邢상무는 "孫부회장이 윗선과 최종 조율하고 있으므로 보안을 유지해달라" 고 말했다.

이때 쌍방울 대표로 참석한 한 임원이 "그렇게 많은 물량을 짧은 기간에 생산하려면 원단을 미리 확보해야 하는데 계약도 없이 해도 되느냐" 고 묻자 邢상무는 "북한으로 가는 것" 이라고 대답했다.

생산물량은 니트연합회 회원사 1백20만벌, 전방군제 60만벌, 쌍방울 36만벌씩 배정했고 나머지 물량은 전경련이 태창 측과 별도로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방군제는 내의업체 중 유일하게 전경련회원사여서 포함됐고, BYC는 일정상 만들 수 없다며 포기했다.

그런데 9월 들어 내의지원 사업이 불투명해지자 전경련 邢상무는 해당 내의업체에 "사업이 변경된 것 같다" 며 "좀더 기다려 달라" 고 알렸다.

◇ 태창은 왜 계약서도 없이 생산을 시작했나〓화의 상태인 태창은 수백억원이 들어가고 대금 결제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하청업체를 통해 내의를 생산했다.

니트업계 관계자는 "6.15 정상회담이 이뤄지기 전으로 대북지원 사업이 봇물을 이룰 때" 라며 "정부든 전경련이든 태창측에 지원 언질이 없었다면 단독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사업" 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태창이 대북 내의 지원 사업을 계기로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추진했을 가능성도 있다" 고 말했다.

태창의 이주영 사장은 9월 중순 내의 지원 사업이 사실상 보류된 시점에도 니트연합회 회장단과 만나 "연말에 북한에 보낼 내의는 우리가 모두 만들 수 있도록 양보해달라" 고 요청했다.

李사장은 지난 19일 납품대금 지급을 요구하며 항의차 상경한 내의 하청업체 대표 7명에게 대북사업의 추진 경위를 설명하면서 슬라이드를 통해 ▶북한 아태위원회 황철 실장이 서명한 내의 공급 합의서▶내의 제품 사양서와 포장방법 등을 명시한 통일부 공문▶태창이 지원해 건설한 북한철도 사진을 보여주었다.

◇ 전경련은 왜 참여했나〓전경련 손병두 부회장은 25일 "전경련이 재계의 창구로 남북경협을 추진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생각해 본 것" 이라며 "4대 그룹과 상의했더니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그만 두었다" 고 말했다.

전경련 형동우 상무는 "손 부회장이 불러 9월 1일 4대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회의에서 내의를 지원하려면 얼마나 드는가 등 조사한 내용을 보고했다" 며 "재계 차원에서 6백억원을 걷자는 논의를 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 라고 부인했다.

邢상무는 8월 말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태창 李사장을 만났고, 내의업체 임원들은 "邢상무가 태창이 북한당국과 서명한 내의공급 합의서를 봤다고 말했다" 고 전했다.

또 邢상무는 니트연합회측에 "태창이 내의 1천만벌을 혼자 생산한다고 고집하니 李사장을 만나 서로 협의해보라" 고 권유했다는 것이다.

邢상무는 "내의 주문을 의뢰했다면 색상과 재료를 어떻게 할지 중간에 상의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 고 말했지만, 전경련은 쌍방울 등으로부터 샘플을 받았고 니트연합회를 통해 의류시험연구원이 보낸 시험항목서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는 납기일이 다가오면서 수백만벌을 미리 만들어온 태창이 하청업체들로부터 납품대금을 지급을 요청받고 곤경에 빠졌고, 전경련은 정부 당국의 언질을 받아 내의 대금을 지원하려다가 방향이 바뀌면서 일이 꼬인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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