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들 단체로…기막힌 군대식 '얼차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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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8일 전남 나주의 모 리조트 주차장에서 전북과학대 치위생과 여학생 수십여 명이 ‘오리걸음’을 걷고 있다. 선배들이 후배들을 대상으로 ‘군기’를 잡는 장면이다.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이 촬영해 본지에 제보했다.

8일 오후 5시쯤 전남 나주의 모 리조트 앞 주차장. 리조트 건물에서 100여m 떨어진 비탈길을 수십 명의 여학생이 주저앉은 채 힘들게 걸어간다. 일명 오리걸음이다. 이들은 다시 주차장을 한 바퀴 돈 뒤 차례로 기마자세를 취했다.

일부 학생은 주먹을 쥔 채 ‘엎드려뻗쳐’를 했다. 힘들어 일어나지 못하는 학생에게 강제로 10여 분간 기마자세를 시키는 모습도 보였다. 이들은 8∼9일 1박2일 일정으로 연합MT(Membership training·친목대회)를 온 전북 정읍의 전문대학인 전북과학대(총장 김동준) 치위생과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졸업하면 병원이나 학교 보건실 등에서 치과 위생사로 일하게 된다. 학생들은 이날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오리걸음 ▶선착순 ▶기마자세 취하기 ▶엎드려뻗쳐 ▶어깨동무한 채 앉았다 일어나기 ▶팔벌려뛰기 등 가혹한 체벌을 되풀이했다. 팔벌려뛰기를 할 땐 “(하지 말라고 한) 마지막 구호를 외쳤다”며 꾸짖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군대에서도 유격장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다. 3학년 학생 5∼6명이 2학년 30여 명을, 2학년이 신입생 30여 명을 체벌한 것이다. ‘군기잡기’가 마무리될 무렵엔 “안녕하십니까”라는 학생들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이들은 조폭처럼 고개를 90도로 숙인 채 거듭 머리를 숙였다.

전북과학대 치위생과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엎드려뻗쳐’를 시키는 장면.

 일부 대학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선배들의 후배 길들이기가 여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연합MT 등을 통해 이 같은 군기잡기가 대물림되는 것이다. 이 같은 동영상을 본보에 제공한 A씨는 “우연히 지나가다 근처에서 촬영했다”며 “선배가 무릎 꿇고 있는 후배 여학생의 왼쪽 어깨를 발로 차는 모습을 보고 ‘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군대에서도 사라진 폭력문화가 대학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고 말했다. 학생회 일을 맡고 있는 최모씨는 “저녁 먹기 전 한 시간 정도 (얼차려가) 있었다”며 “관례적으로 3학년이 2학년을, 2학년이 1학년에게 얼차려를 줬는데, 저녁 먹고 레크리에이션을 하면서 모두 풀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후배 길들이기는 학교 측의 무책임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이번 MT엔 교수 3명과 조교 1명이 동행했다. 투숙객 박모(27·여)씨는 “대형버스 사이에서 얼차려를 받는 게 유리창 너머로 모두 보였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교수회의 등을 통해 성폭력·폭행·음주 등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교육을 했는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MT에 동행한 한 교수는 “방 배정을 한 뒤 학생들이 ‘선후배들 간에 자기 소개, 인사 나누는 시간을 갖겠다’고 요청해 허락했다”며 “정확한 조사를 벌여 문제가 있으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나주=유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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