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대양해군, 스위치 눌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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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제주 해군기지 건설 현장인 서귀포시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에서 공사를 위한 발파가 시작됐다. 발파에 사용된 화약은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시위대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해상을 통해 옮겨졌다. [연합뉴스]

“발파 5초 전, 4, 3, 2, 1, 발파! 쿠~웅.”

 7일 오전 11시22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의 구럼비 해안가. ‘안전휴게실’이라고 쓰인 가건물 인근에서 굉음과 함께 바위 파편이 30m 상공으로 튀어 올랐다. 깊이 4.5m의 발파공 112개에 폭약 600㎏을 사용한 발파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경찰은 발파 현장으로부터 100m 반경 내의 출입을 막고 높이 3m·폭 4m 크기의 가림막 5개를 설치했다. 발파를 막기 위해 모인 70여 명의 시위대가 술렁거렸다. 일부는 “어머니의 젖가슴과 같은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느냐”며 언성을 높였고, 일부는 폭발음을 듣고 아예 주저앉았다. 시위대 중 마을 주민은 20여 명이고, 나머지는 정치인과 사회단체 등 외부인이었다. 지난해 8월에 비해 주민 수는 급격히 줄었다. <관계기사 8면>

 이날 발파 작업은 해군의 기동전단 전초기지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방개혁 2020’과 함께 추진한 핵심 외교안보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4년9개월 뒤인 7일 제주도에는 노 전 대통령 때 총리로서 해군기지의 필요성을 역설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상임고문이 신경민 대변인 등과 달려와 ‘결사 반대’를 주장했다. 특히 정 고문은 이날 정인양(해군 준장) 제주기지사업단장에게 “4·11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된다. 연말엔 정권도 바뀐다. 당신이 지휘관이라면 결단을 내려라. 당신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도 이날 강정마을에서 연좌 시위에 참석했다. 23일째 계속되고 있는 서울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 탈북자 북송 저지 시위를 외면해 온 야당 지도부가 동시에 제주도에 온 것이다. 지난달 8일 두 당 의원 96명이 주한 미국대사관 앞으로 몰려가 ‘집권 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주장하던 장면과 비슷하다. 정치권 일각에선 ‘한·미 FTA에 이어 제주 해군기지를 반미(反美)의 맥락에서 정치 쟁점화해 야권 연대의 접착력을 높이려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한 대표는 이날 밤 주민들 앞에서 “야권 연대를 이뤄 해군기지 공사를 반드시 중단시키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공사 강행 방침을 재확인했다. 국가 안보에 필수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선거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도도 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이날 한명숙 대표의 공사 중단 요구에 “취지는 잘 이해한다. 하지만 (국책사업을 하다 보면) 항상 반대하는 사람은 있을 수밖에 없다”고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날 발파 작업으로 해군기지 건설공사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셈이다. 환경 파괴, 미군 기지화, 설계 오류 등의 논란에 휘말려 계획보다 13개월이나 늦어진 발파 작업은 앞으로 3개월간 이어진다.

 제주 강정마을=정용수·최경호 기자

평화는 지킬 힘이 있어야 뒷받침이 가능하고, 안보 보장 없는 평화는 있을 수 없으며 제주 해군기지는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2007년 6월 22일 제주 평화포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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