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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필요한 뉴타운 출구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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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동호
내셔널팀장

대학생 때니 벌써 20년이 한참 지났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잠시 살 때였다. 20평(66㎡) 남짓한 집이었는데 좁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상당수가 그런 주거환경에 익숙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 1970년대 초등생 때는 겨울철이 되면 온 가족이 한 방에서 지냈지만 불편했다는 기억은 없다.

 세월이 흘러 80년대가 되자 달동네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서민의 애환을 다룬 동명의 방송 드라마까지 있었다. 이후 급속한 도시화로 주택 수요가 급증하면서 달동네는 아파트촌으로 재개발되기 시작했다. 90년대가 되자 60년대 후반 건설된 1세대 아파트를 헐고 새로 짓는 재건축 바람이 본격화했다. 그러면서 도심은 아파트 숲으로 변해갔다.

 주택이 달라진 것은 이 같은 외적 변화만이 아니다. 그 안에 사는 거주자의 삶의 질도 달라졌다. 그래서 경제적 형편이 되면 누구나 고급 주거환경을 희망한다. 교통과 쇼핑이 편리하고 교육 환경이 좋기를 바라며, 이왕이면 방도 넓어서 안락한 쉼터에 살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겨울에 난방비를 아낀다고 온 가족이 한 방에서 지내거나 국민소득이 높아진 지금도 비좁고 오래된 저층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주거문화의 변화를 감안하면 박원순 서울시장의 ‘뉴타운 출구전략’ 성공을 위해서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박 시장은 지금 서울시내 뉴타운·재개발·재건축 사업장 610곳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신정책 구상’을 내놓았다. 경기침체와 구역 지정 남발로 사업 추진이 제대로 안 되자 현지 실태를 조사해 될 곳은 밀어주고 안 될 곳은 구역 지정을 해제하겠다는 취지다. 이런 방침이 나오자 해당 지역 거주자들은 찬반 양론으로 갈라져 수시로 도심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새 집을 원하는 집 소유자는 대체로 추진을 찬성한다. 반면 건축비 감당이 어려운 영세 거주민과 세입자는 추진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각자 상황이 절박하다. 새 집 하나만 바라보고 낡은 집에서 버텨온 사람들이나 공사가 시작되면 삶의 터전에서 밀려날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의 얘기는 모두 일리가 있다.

 서울시는 실태 조사 결과 앞으로 사업을 진행하더라도 소형주택을 많이 짓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규로 늘어나는 가구의 절반을 소형으로 짓겠다는 개포지구 재건축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근시안적인 미봉책일 수 있다. 박 시장 생각대로 거주권 보장이 강화돼야 하지만 쾌적한 집에 대한 수요 증가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출구전략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거주권도 최대한 보장하면서 희망자에겐 넓은 평형을 제공하는 묘안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출구전략이 성공할 수 있다. “이게 신임 시장 방침이니 무조건 따르라”고만 해선 그 묘안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왕 시작한 출구전략이니 꼭 출구를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