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잘못된 벤처기업가의 몰락

중앙일보

입력

창업한 지 3년이 채 안돼 한국디지탈라인과 동방금고 등 20여 기업을 거느리며 한국판 손정의를 꿈꾸던 한 젊은 벤처 기업가가 엊그제 몰락했다.

신용경색으로 자금난을 이기지 못해 예금주의 돈을 사(私) 금고처럼 빼낸 데다 임직원들에게 ''입막음'' 용 보상을 하는 등 불법과 도덕적 해이를 자행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침체 국면에서 허덕이는 코스닥시장과 벤처 기업인들의 이미지가 큰 타격을 받을 게 분명하다.

외환위기 이후 현 정부의 가장 큰 치적이라면 벤처기업의 창업 붐일 것이다.

''묻지마 투자'' 가 한국 경제를 ''카지노 자본주의'' 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지만, 벤처 기업가들은 정보통신과 콘텐츠 등 인터넷 기반 지식산업이 미래를 먹여살릴 수종(樹種) 산업이라며 거품은 필요악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벤처 기업가들의 ''먹튀(먹고 튀자) '' 라든가 기술 축적보다 벤처 캐피털로의 변모, 비 관련 다각화 투자 등 ''재벌 구태 따르기'' 가 횡행했었다. 이러니 투자자들의 마인드가 ''옥석(玉石) 가리기'' 로 급격히 변해버린 것이다.

우리는 벤처산업과 코스닥시장이 자생력을 잃을 정도로 붕괴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의 침체 국면은 잘못된 벤처 기업가들의 자연스런 몰락을 유도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부는 투융자나 조세 감면 등의 직접적인 지원정책 등을 펴서는 안된다.

정부 지원에 선행돼야 할 것은 벤처 기업가들의 인식 전환과 그에 따른 행동양식의 변화다. 벤처의 속성은 다생다사(多生多死) 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벤처기업에선, 인수.합병이나 기업부도가 창피하거나 기업회생 불능으로 낙인 찍히는 굴뚝산업의 풍토와는 달라야 한다.

정부나 벤처기업들은 지금의 위기상황을 방치할 게 아니라 거품을 빼고 옥석을 가리는 조정을 거쳐 거듭 태어나는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IT산업이 살아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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