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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기업 사장이 금고를 '사금고'로

중앙일보

입력

코스닥 붐을 타고 인터넷기업을 잇따라 인수하며 한국의 소프트뱅크를 꿈꿔온 30대 벤처기업인이 코스닥시장 침체로 위기를 맞자 상호신용금고의 고객돈까지 손댔다가 결국 덜미가 잡혔다.

이 과정에서 금고 직원들까지 대주주의 불법행위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거액의 명예퇴직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나 구조조정을 앞둔 금융권 일각의 직업윤리 실종도 우려된다.

◇ 사(私)금고로 전락한 동방.대신금고〓21일 금융감독원이 불법대출을 적발한 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 사장은 지난해 9월 태평양그룹에서 동방금고를 인수했다. 벤처 사장이 금고를 인수한 속셈은 딴 데 있었다.

자신이 대주주인 한국디지탈라인창투에 6백50억여원의 불법 대출을 해주는 데 이용한 것. 20여개 인터넷기업을 닥치는 대로 인수해 인터넷기업 그룹을 만들겠다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 금고의 고객돈까지 끌어다쓴 셈이다.

정사장은 자신의 사설 펀드가, 역시 자신이 대주주인 평창정보통신 주식을 샀다가 손해보자 동방금고로 하여금 이 주식을 비싸게 사도록 해 손실을 메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동방금고 직원 40명은 대주주의 불법행위를 눈감아주고 1인당 1천5백~1억8천만원의 명예퇴직금을 챙겼다. 이들이 곧바로 계약직으로 재고용된 것은 물론이다.

◇ 평창정보통신 소액주주의 고발〓정사장은 지난 8월 평창정보통신 주식을 공개 매수하겠다며 소액주주 4백여명에게서 48만여주의 주식을 건네받았다.

그러나 정사장은 약속한 날짜를 수차례 어기며 인수대금을 주지 않았고, 결국 공개매수를 포기한다고 발표해 버렸다. 이 때문에 장외시장에서 1만원 안팎이던 평창정보통신 주식이 3천원대로 폭락했다.

그후로도 정사장은 소액주주에게 주식 인수대금을 주지 않았고 주식도 돌려주지 않아 검찰에 고발당했다. 정사장은 소액주주 주식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 정현준 사장은 누구〓정사장은 기업 인수.합병(M&A)업계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M&A 전문가였다.

코스닥시장에 ''묻지마 투자'' 바람이 일자 평소 알고 지내던 전주(錢主)들로부터 돈을 빌려 벤처투자에 나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벤처기업을 인수, 주가를 뻥튀기해 이를 담보로 돈을 빌린 뒤 다시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그의 사업 모델이 코스닥시장이 침체하자 거꾸로 그의 발목을 잡았다.

코스닥시장이 폭락, 그에게 돈을 대줬던 전주들이 어음을 돌리기 시작하자 다급해진 정사장은 금고의 고객돈에 손을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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