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연극 ‘라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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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라이어’는 두 집 살림을 하는 겁 없는 택시운전사 존 스미스의 이야기다. 두 아내와 형사들을 속이기 위해 존은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즐길 수 있다.

 평화로운 아침. 한 여자가 초조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든다. “여보세요? 스트리트햄 경찰서 맞나요? 바바라 스미스라고 해요. 어젯밤 남편이 사라졌어요. 아뇨, 집에 안들어 왔다구요! 이름은 존 스미스에요.” 같은 시각, 윔블던 거리의 한 가정집. “여보세요? 경찰서죠? 메리 스미스에요. 실종신고 접수하려구요. 실종된 사람은 존 스미스, 제 남편이에요.” 15분 거리의 스트리트햄과 윔블던이라는 동네에 존 스미스라는 사람이 산다. 그럴 수도 있다. 흔한 이름이니까. 근데 이상하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둘다 사라졌단다. 다음 순간, 두 여자가 동시에 대답한다. “남편 직업이요? 택시 운전기사에요.”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연극, ‘라이어’다.

 ‘라이어’는 택시운전사 존 스미스(이하 존)의 이야기다. 섹시하고 매력적인 바바라와 단아한 현모양처 메리는 각각 스트리트햄과 윔블던에 사는 존의 아내다. 그러니까 존이라는 이 남자, 겁도 없이 두 집 살림을 한다는 말이다. 존은 철저한 일일 계획 아래에서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며 두 집 살림을 이어간다. 들통 나면 법적인 처벌을 받는다는 걸 알면서도 이중생활의 달콤함은 쉽게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완벽한 거짓말은 없는 법. 어느 날 존은 가벼운 강도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그로 인해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던 그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바바라와 메리에게 각각 약속했던 귀가 시간을 지키지 못한 것. 두 아내에게 남편이 실종됐다는 신고를 받은 형사들은 각각 스트리트 햄과 윔블던에 있는 존의 집을 방문하다. 그리고 존과 존의 친구 스탠리는 두 형사와 ‘아내들’을 속이기 위해 필사적인 거짓말을 시작한다. 해본 사람이면 다 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그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는 걸.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부풀어만 간다.

 코엑스아트홀에서 연극 ‘라이어’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일간에서는 “또?” 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익숙하다는 말이다. 대학로·신촌은 기본이고 전국 각지 및 해외 진출 경력까지 있으니 말 다 했다. 알 만한 사람은 다안다. 1999년 5월 초연 이후 올해로 벌써 13년째다. 지난해에 1만5000회 공연을 돌파했고, 지금까지 총 관객 수는 200만이 넘는다. 대체 ‘라이어’에 어떤 매력이 있길래 그긴 시간 동안 꾸준히 사랑 받을 수 있었을까.

 간단하다. 재미있어서다. 내용은 물론이고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웃는 줄 알았더니 어느새 울고 있고, 조금 뒤에는 소리를 지르며 무대를 전후 좌우로 뛰어다닌다.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게다가 10분에 한 번씩은 웃음이 터진다. 남녀노소 성별 불문, 세대 불문이다. 그런 덕에 연인?친구?가족까지 다양한 관객층이 찾을 수 있다. 함께 즐길 거리가 부족한 요즘 같은 시대에 꼭 필요한 효자 공연이다. 입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다.

 구성이 탄탄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을 논리적으로 이어나간다는 게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전체적인 거짓말과 캐릭터 개개인의 성향에 따른 거짓말,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거짓말, 이 모든 것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어야 완벽한 작품이 완성된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극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100분이 훌쩍 지나간다.

 지난 1월 6일부터 시작한 오픈런 연극 ‘라이어’는 복합문화공간 코엑스아트홀에서 관람할 수 있다. 코엑스아트 홀에서는 공연 관람뿐 아니라 오락과 쇼핑까지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어서 더 좋다. 화?목요일은 오후 8시, 수·금요일은 오후 5시와 8시에 공연이 있다. 주말에는 오후 4시·7시에 2회 진행되고, 월요일엔 쉰다. 관람료는 전석 2만5000원이다.

▶ 문의=1588-5212

<나해진 기자 vatang5@joongang.co.kr 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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