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뉴타운 해결사’ 시의회서 거부당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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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2012년 서울특별시 통합방위회의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왼쪽)과 허광태 서울시의회 의장. [뉴시스]

지난해 12월 6일 박원순(56) 서울시장과 허광태(57) 서울시의장은 두 손을 굳게 잡았다. ‘소통·화합 시정’ 선포식을 하며 시와 의회가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것이다. 시와 시의회가 대립으로 일관했던 전임 오세훈 시장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후 두 수장은 연초 허 의장의 고향(전북 진안)으로 함께 휴가를 가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평화민주당 출판부장을 지낸 당료 출신 허 의장은 3선 서울시의원이다. 범야권 후보 출신의 박 시장과는 찰떡 궁합을 이룰 것으로 예상됐다.

 예상대로 서울시와 시의회는 박 시장 취임 이후 4개월간 밀월을 즐겼다. 하지만 최근 두 기관 사이에 전에 없던 냉각 기류가 감지된다.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계기는 인사 문제다.

 SH공사 사장을 둘러싼 최근의 잡음이 이런 분위기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SH공사는 70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서울시내 도시정비·뉴타운 사업 등을 하고 있다.

 당초 구도는 면접에 응한 4명 가운데 박 시장이 마음에 뒀던 최항도(53) 전 서울시 기획조정실장이 사실상 내정된 수순이었다. 25조원에 달하는 서울시 부채 중 17조원이 SH공사 부채인 상황에서 부채와 뉴타운 문제를 푸는 데 예산·조직 전문 관료인 최 전 실장이 적임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사추천위원회를 거치면서 SH 전·현직 관계자 두 명이 최종 후보로 시장에게 추천되는 ‘이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시의회가 추천한 위원 3명이 최 전 실장에게 최하점을 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박 시장이 불쾌해 했다는 것이다. 시 관계자는 “현재 박 시장이 이번 공모를 무효로 할지, (추천된) 2명 중 낙점을 할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의회는 더 나아가 시의회 인사 검증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시의회가 지난달 27일 의결한 ‘기본조례’에는 시장이 임명한 산하기관장에 대해 30일 이내에 상임위에서 능력을 평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서울시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 시장이 인사 문제에 뚜렷한 원칙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시의회의 ‘인사 간섭’을 자초했다는 시각도 있다. 서울시는 본청 공무원만 1만6000명에, 산하기관 인력을 합치면 4만 명에 달하는 방대한 조직이다. 익명을 원한 시의원은 “이번 SH공사 사장건은 오세훈 전 시장의 대표적 인맥으로 꼽히는 최 전 실장을 박 시장이 SH공사 사장으로 민 것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가급적 시민단체나 캠프 출신 인사는 기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당초 공언도 지키지 못했다. 취임 후 임명한 산하기관장 6명 모두 시민단체 출신이거나 선거캠프에 관련된 사람들이다. 양측 갈등의 배경에는 토건(土建)사업에 대한 입장 차이도 있다. 박 시장이 뉴타운 등 토건사업에 부정적 입장을 표하면서 지역 민원에 민감한 시의원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광태 의장은 “시와의 협조는 사안과 정책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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