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먹칠한 학연·지연의 덫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프로야구는 ‘학연’과 ‘지연’ 때문에 망쳤다.”

 프로야구 경기조작 사건 수사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브로커와 선수가 프로야구의 공정성을 무너뜨렸다”며 씁쓸해 했다. 검찰에 따르면 프로야구 경기조작은 지연에서 시작됐다. 제주도 출신 브로커 강모(29·구속)씨가 제주도에서 고교를 나온 대학 야구선수 출신 브로커 김모(26·구속)씨를 만나면서다. 고교 야구선수였던 김씨는 2004년 서울에서 제주관광고(현 제주고)로 전학했다. 고교 2학년 때 학교 야구부가 폐지돼서다. 이후 대구의 영남대로 진학해 투수로 활동했지만 프로구단에는 입단하지 못했다. 이때 서울에서 강씨를 만났다. 제주도 출신이란 점에서 두 사람은 금세 가까워졌다.

 김씨는 지난해 2월 서울 잠실동의 강씨 집에서 함께 생활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프로배구처럼) 프로야구도 경기조작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2개월 후 강씨가 김씨에게 “그러면 네가 야구선수들과 접촉해 보라”고 했다는 것이 검찰의 수사 결과다. 강씨는 2010년 초부터 프로배구 경기조작에 가담하고 있었다.

 김씨는 고교 야구부 후배인 넥센 히어로즈의 김성현(23·구속) 선수를 떠올렸다. 김씨는 김 선수를 강씨에게 소개했다. 그러곤 첫 회 출전하는 타자에게 포볼을 주면 한 차례에 300만원을 주겠다고 제의했다. 김 선수는 고교 선배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돈의 유혹도 컸다. 연봉이 5800만원이었던 그에게 300만원은 큰돈이었다. 결국 김 선수는 4월 24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포볼을 던진 데 이어 5월 29일 LG전에서 다시 같은 식으로 경기를 조작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김씨는 LG 트윈스의 박현준(26) 선수에게도 손을 뻗쳤다. 두 사람은 동갑인 데다 같은 투수로서 대학 야구 경기 때 만나 아는 사이였다. 박 선수는 더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강씨 등은 박 선수가 “볼넷 내줄 테니 500만원 줄래”라는 말도 했다고 진술했다.

 브로커들이 선수를 위협한 정황도 포착됐다. 김 선수는 지난해 5월 14일 LG전에서 두 번째 경기조작에 나섰다. 경기 전에 미리 300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타자가 공을 치는 바람에 실패했다. 그러자 강씨와 김씨가 욕설을 하고 위협하며 다시 경기조작을 요구했다고 한다. 김 선수는 15일 뒤인 29일 LG와의 경기에서 다시 포볼을 던졌다. 김 선수 측은 이 일로 두 사람에게 3000만원을 뜯겼다고 주장했다. “너 때문에 (베팅에서) 손해를 봤다”며 돈을 요구했다는 게 김 선수 측 변호사의 주장이다. 그러나 검찰은 브로커를 통해 베팅한 자금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검찰은 박 선수가 단순히 경기조작에만 가담한 것으로 보고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첫 회 포볼이 승부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아 선수들이 죄의식 없이 경기를 조작한 것 같다”며 “지난해 5월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태가 터진 와중에 야구에서도 경기를 조작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