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파이프 잘라 홀 뚫었는데 … 그 지름이 108㎜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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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호 19면

골프의 유래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정확히 밝혀진 바 없고 아직도 많은 논쟁이 있다. 중세 유럽의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다수설일 뿐이다. 19세기 후반에 영국과 그 연방, 그리고 미국에까지 퍼져나간 골프는 ‘타깃 스포츠’다. 즉 홀이라는 목표점에 공을 넣는 게임인데 그 홀 안에는 금속 혹은 플라스틱 재질의 컵(cup) 모양 원통이 박혀 있어서 홀을 컵이라고도 부른다.

박원의 비하인드 골프 <4> 홀 크기의 유래

과거 스코틀랜드에서는 어떻게 홀을 설정했을까. 야생동물이 파 놓은 굴을 활용했다는 기록이 전해오며, 특히 토끼굴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당시 골프가 성행한 스코틀랜드의 링크스(Links·바닷가의 버려진 땅 혹은 나대지)에는 토끼굴이 많았다고 한다. 그 사실을 고려할 때 토끼굴은 상당한 근거가 있는 얘기다.
당시는 홀 바로 근처에서 다음 홀 티샷을 했기 때문에 방금 끝낸 홀(토끼굴)에서 모래를 조금씩 꺼내는 관행이 있었다고 한다. 이유는 티샷 때 공을 올려 놓는 데 모래가 요긴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골프 역사 초기의 링크스 골프코스에서는 요즘처럼 티펙을 사용하지 않고 모래를 쌓아 올려 그 위에 공을 놓고 쳤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LPGA 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라 데이비스(49·잉글랜드)는 지금도 종종 티펙 대신 티잉 그라운드의 잔디를 모아 그 위에 공을 놓고 티샷을 한다.

그런데 홀에서 모래를 꺼내는 관행이 큰 문제를 발생시켰다. 모래를 꺼내느라 손이 들락날락 하는 바람에 경기 중 홀의 상태와 크기가 달라진 것이다. 경기의 공정성이 문제가 됐다. 대한골프협회(KGA) 규칙분과위원회 박종업 위원장은 저서 골프룰 그 역사와 해석에서 이렇게 썼다. ‘1880년대 말 골프 붐이 일면서 홀의 크기에 대한 표준화 논의가 시작되었고, 1891년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새로 재정한 골프 룰에서 홀 크기를 지름 4¼인치(108㎜)로 하고, 그 깊이를 적어도 4인치(100㎜)로 정하게 되었음을 적시했다.’

홀의 지름을 4¼인치로 정한 이유는 골프 역사서에 자주 등장한다. 근대 골프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 머셀버러(Musselburgh) 골프클럽(사진)에서 1829년 주변 링크스에 설치된 파이프를 잘라 홀 뚫는 공구(hole-cutter)를 만들었다. 그 공구는 1파운드에 판매됐는데 R&A의 룰 제정 담당위원들의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 공구로 뚫으면 홀 지름이 4¼인치가 나오기 때문에 골프 룰로 아예 홀의 크기를 정했다는 것이다. 당시 사용됐던 공구는 지금도 머셀버러 골프클럽의 클럽하우스에 전시돼 있다.

골프룰은 1908년 수정되면서 ‘철제 원통이 사용될 경우 홀 가장자리보다 아래로 묻혀야 하며, 그 외경은 4¼인치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또 홀 안에 사용되는 원통(컵)에 대한 규정도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이를 볼 때 그 이전부터 원통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골프 장비와 코스는 많은 변화와 발전을 이루어왔다. 홀인되는 골프공을 보여주기 위해 홀 안에 카메라까지 장착하는 시대다. 하지만 110여 년 전 정한 홀 크기만큼은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다.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홀의 크기와 함께 중요한 것이 홀 위치 선정에 관한 원칙이다. R&A와 함께 전 세계 골프규칙을 제정하는 미국골프협회(USGA)의 가이드 라인에 따르면 홀 위치 선정에는 타당성과 공정성이 강조된다.

첫째, 페어웨이에서 핀을 공략할 경우 프린지(Fringe·그린 가장자리 둘레)와의 간격이 너무 좁은 곳에 홀을 설정해서는 안 된다. 둘째, 홀 주변 90~120㎜ 정도의 범위 내에 상당한 정도의 경사가 있어서도 안 된다. 셋째, 그린스피드에 견주어 지면이 가파른 곳이라 공이 멈춰서지 못할 정도의 지점에 홀을 설정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 타이거 우즈가 최근 PGA 투어에서 1.5m 전후의 퍼트를 라운드당 5개 정도나 놓치며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몰아 쉬는 장면이 TV로 방영됐다. 결코 크지 않은 지름 108㎜의 홀이 골퍼들의 희비를 갈라놓는 ‘요술의 구멍’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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