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자구책 절반은 '형제기업' 손길에 달려

중앙일보

입력

현대중공업이 19일 서둘러 긴급 이사회를 열고 현대건설이 보유 중인 현대중공업과 현대정유 지분을 인수하기로 결정해 일단 현대건설의 자금난이 숨통을 트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전환사채 인수를 거부하는 등 현대건설의 추가 자구계획 이행은 그다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추가 자구계획의 절반 정도는 계열사와 관계사의 도움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과 현대차.중공업 간 화해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으나 아직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며 시장의 반응도 미지근하다.

현대건설이 추가 자구계획을 실행하려면 계열 분리한 현대차나 계열 분리를 앞둔 현대중공업이 도와줘야 하는데, 소액주주와 사외이사.시민단체 등의 감시 속법적 하자가 없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은 상태다.

현대는 자구계획 이행을 가속화하려면 '현대 사태' 를 불러온 형제간 불화를 씻어야 한다고 보고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과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 등이 나서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다.

◇ 고심한 현대중공업 이사회〓현대중공업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장시간 논의 끝에 현대건설이 내놓은 중공업과 정유 주식을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이사회는 ▶반드시 매입해야 하는지▶주주와 회사 이익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공정거래법 등 관련 법에 어긋나는 것은 없는 지 등을 놓고 논란을 벌였다.

이사회는 한차례 정회한 뒤 이사 개인별로 추가 자료를 검토한 뒤 오후 4시쯤 의견을 취합해 최종 결정했다.

사외이사인 이선호 전 수출입은행 전무는 "회사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를 위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자는 분위기였다" 고 전했다.

◇ 현대중공업 지분 인수의 걸림돌〓증권거래법 상 자사주를 매입하려면
①이사회 결의를 거친 뒤 공시하고
②금감위에 신고한 뒤 3일 뒤부터
③장내 매수를 통해 매입해야 하며
④전일 종가의 5% 이상 높은 가격에 주문을 낼 수 없고⑤매입한 뒤 결과를 금감위에 보고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칠 경우 현대중공업 주가는 오를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현대중공업은 비싼 가격에 사들여야 한다.

또 시간외 매매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현대건설이 팔려고 내놓은 주식만 살 수가 없다. 일반 투자자의 팔자 물량과 섞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 자사주의 경우 장외(場外)매매는 금지돼 있다. 은행의 특정금전신탁을 통해 매입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1999년말 없어졌다.

금융감독원 유흥수 공시감독국장은 "자사주는 장중에 장내 공개 매수를 통해서만 사들일 수 있다" 며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주식을 현대중공업이 인수할 때도 예외가 있을 수 없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다.

◇ 전환사채(CB)놓고 삐걱〓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19일 고위 임원회의에서 현대건설의 CB에 대한 인수 거부 의사를 밝혔다.

鄭회장은 "형제간 화해는 가족간 문제인 만큼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고 전제한 뒤 "전환사채 매입은 이사회에서 결정할 사안이지만 시장원리에 반하는 만큼 이사회 상정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고 말했다.

현대차 김원갑 전무도 "공정거래법상 전환사채 인수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9월 계열분리할 때 계열사간 자금지원을 하지 않고 타인 명의로 계열사 지분을 갖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냈다" 고 말했다.

현대건설 CB 인수 방안은 현대가 먼저 제시한 게 아니라 18일 외환은행과 협의 과정에서 '총액 맞추기용' 으로 급히 끼워넣었다.

이 때문에 CB 인수 계열사로 지목한 현대차나 중공업과 사전 협의도 없이 발표부터 한 것이다.

현대 관계자는 "전환사채는 자동차와 중공업이 인수를 거부하면 다른 계열사와 협의할 수도 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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