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Global] 브로드웨이서 주목 받는 한국계 연극인 제니퍼 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2면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는 아시안 연극인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한인 배우 헤티엔 박이 출연한 연극 ‘세미나’, ‘M. 버터플라이’의 중국계 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이 쓴 ‘칭글리시(Chinglish)’까지. 특히 ‘칭글리시’는 최근 미국 언론에서 올해 토니상 후보감으로 가장 빈번하게 거론되는 작품이다. 그런데 미국인 간판 사업가가 중국의 소도시 귀양에서 겪는 문화 충돌기와 로맨스를 그린 ‘칭글리시’의 주인공이 한국계 배우 제니퍼 림(사진)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녀의 능청맞은 연기는 뉴욕 매거진으로부터 ‘토니상 여우주연상감’이라는 평까지 받았다. 그녀에겐 한국 연극의 DNA가 있다. 풍자극 ‘국물 있사옵니다’의 작가 이근삼(1929~2003) 선생이 외삼촌 할아버지다. 이근삼은 전후 한국 연극계에 풍자와 해학, 패러디 등을 통해 사회 부조리를 날카롭게 비판해온 한국 대표 희곡작가다.

●벌써 토니상 여우주연상 물망에 오르고 있는데 기분이 어떤가.

 “토니상 후보에 오르는 것 자체가 최고의 영광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족하고 지금 당장은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의해 주의가 분산되지 않도록 하고 싶을 뿐이다!”

●이 작품을 통해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는데.

 “나로서는 꿈꿀 수 있는 최고의 데뷔작이다. 아시아계 배우들에게 브로드웨이에서 배역을 따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배역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이 이제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시즌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아시아계 배우들이 무대에 서고 있으니까. 하지만 아직도 백인은 물론 흑인이나 남미계 배우들에 비해서도 배역의 수는 터무니없이 적다.”

●어떻게 역을 맡게 됐나.

 “2009년 12월 희곡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이 제1 막을 막 쓴 후 처음부터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됐다. 리딩(낭독회)에 계속 오라고 했다. 우린 모두 5회의 워크숍을 한 후 시카고 공연에서 내게 역이 주어졌다. 오디션은 없었고, 나 외엔 아무도 리딩을 하지 않았지만 열심히 했다!”

●시얀은 어떤 인물이며 어떻게 해석했나.

 “시얀은 귀양시의 문화부국장이다. 극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현대 중국사를 공부했다. 중국과 미국의 관계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 내가 맡은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대본과 그녀의 대사밖엔 별로 준비할 것이 없었다. 시얀의 성격은 희곡을 읽은 첫 순간부터 나와 무척 친숙했다.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사실 얼마나 쉬웠는지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다.”

●연기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일이었다. 연극이 재미있기 때문에 리허설과 공연에서 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막느라고 정말 힘들었다.”

●만다린어는 액센트 코치의 도움을 받았나.

 “만다린어를 할 줄 알지만 우리 문화자문인 조앤나 리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의 억양이 엄격하게 정확해야 했기 때문이다. 중국 억양으로 말하는 영어엔 코치가 필요없었다.”

●제일 좋아하는 대사는.

 “마지막 장면에 시얀과 미국인 사업가 대니얼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다. 무척이나 치밀하게 짜인 장면으로 미국문화 대 중국문화의 차이가 전적으로 폭로된다. 재치 있게 예상을 뛰어넘는, 재미난 장면이다.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대사들이 많지만 밝히고 싶지는 않다. 관객들이 직접 발견해야 하니까.”

●제일 좋아하는 ‘칭글리시’가 있나.

 “작품에서는 ‘장애자용 화장실’을 ‘기형인간의 변소간(Deformed Man’s Toilet)’이라 부르는 대목이다. 이건 정말 잘못된 표현이다!”

●뉴욕의 희곡작가 이영진씨의 작품 ‘용비어천가’에 출연한 것으로 아는데.

 “난 그때 한인 3세를 연기했다. 뉴욕은 물론 미국 여러 도시와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노르웨이, 스위스,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 등지에서 순회 공연을 했는데 관객 반응이 무척 좋았다. 난 이영진씨를 높이 평가한다. 탁월하고 개성 있는 작품을 쓰는 작가다.”

●자신 안의 한국적인 본성이라면.

 “외가 쪽과 무척 가깝다. 이근삼 외삼촌할아버지 외에 이모는 세트디자이너이고, 이모부는 연출가다. 내가 영국 브리스톨대학의 연극과에 합격했을 때 외삼촌할아버지가 기뻐하셨다. 만일 아직도 살아계셨다면 내가 예일대에서 연기를 전공한 것뿐만 아니라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고 있는 것에 정말 좋아하셨을 텐데.”

●한국에서 좋아하는 것은.

 “친척이 많아서 종종 갔는데, 여러 한식을 먹고 남대문과 동대문 시장에 가는 걸 즐겼다. 그리고 목욕탕에서 때 미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후회 없이 사는 것. 우리는 단 한번 산다. 그러니 삶을 충분히 살아야 한다!”

뉴욕=박숙희 프리랜서 기자

제니퍼 림

영국 유학 중 만난 중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났으며, 홍콩에서 출생했다. 영국 브리스톨대학 연극과 졸업 후 예일대학원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이영진씨의 ‘용비어천가’를 비롯, ‘칭 총 차이나맨’ ‘복수는 기다릴 수 있어’ 등에 출연해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