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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사장 "과장 땐 사표, 부장 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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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달 29일 부산 KBS홀에서 열린 ‘열정락(樂)서’ 강연자로 무대에 선 윤부근(59·사진)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부문 사장은 청중에게 ‘손 번호’ 게임을 제안했다. 손바닥을 펴고 자신에게 해당되는 항목마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라는 것이다.

 “남들보다 재능이 부족하다. 내 환경이 열악하다. 나를 밀어줄 사람이 없다. 늘 생각대로 안 풀린다. 내가 생각해도 내 미래가 걱정이다.”

 객석을 가득 메운 대학생 3500명 중에는 다섯 손가락을 모두 접고 주먹을 쥔 이들이 제법 많았다.

 “제가 바로 이 다섯 가지 다 해당됐던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울릉도에서 나고 자란 섬소년이 ‘TV 세계 1위’ 신화를 쓰고 국내 최고기업 사장에 오른 이야기를 풀어놨다. 그는 “돌이켜보면 마음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었다”는 말로 강연의 문을 열었다. ‘열정락서’는 다양한 분야의 명사와 삼성 최고경영자(CEO)가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 행사다.

 윤 사장은 울릉도에서 태어났다. 중학교를 마치고 대구의 고교에 시험을 쳤는데 떨어졌다. 첫 번째 실패였다.

 울릉도에서 한 곳뿐인 고교에 다니다가 무작정 육지로 나섰다. 대구에서 몇 달을 독서실 의자에서 먹고 자고 공부하는 바람에 발이 부어 운동화가 안 들어갈 정도로 독하게 공부한 결과 고등학교에 합격했다. 친구들이 고 3일 때 고 1을 다시 시작했다. “고등학교 5년 다닌 사람, 아무도 안 계시죠? 남들보다 2~3년 늦는 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쫄지 말고 달리세요.”

 두 번째 좌절은 대입 때 맛봤다. 의대에 가고 싶었지만 낙방했다. 재수할 형편이 아니어서 후기로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택했다. 1978년 삼성에 입사했지만 직장 생활도 처음엔 마음대로 풀리지 않았다. 통신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TV팀으로 배치됐다.

개발팀 과장 시절엔 훨씬 큰 시장인 미국 수출용 TV가 아니라 유럽식(PAL) TV 개발을 맡아 비인기 부서의 서러움을 겪었다. 상사와 마음이 안 맞아 사표도 썼다. 당시 인사담당 이사가 그를 불러 “앞으로 굉장히 커나갈 회사를 그만한 일로 그만두면 아깝지 않으냐”고 설득했다. 훌륭한 ‘멘토’를 만난 덕에 회사에 남을 수 있었다. 윤 사장은 “원하는 대로 안 된다고 좌절하지 말라. 주어진 환경과 변화를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위기는 또 찾아왔다. 개발팀 부장이던 어느 날 인도네시아 공장 설립 프로젝트팀으로 발령이 났다. 엔지니어가 개발팀을 떠나니 좌천당했다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그의 아내는 “식당이라도 해야겠다”며 요리사 자격증을 따러 학원에 다녔다.

그렇게 시작한 해외 근무는 독일 연구소, 영국 근무로 이어졌다. 서울로 돌아온 뒤 99년 임원으로 승진했다. 입사동기 중에서 가장 늦었다. 하지만 회사 내 여러 부서를 돌고 해외 경험을 쌓은 게 오히려 자산이 됐다. 윤 사장은 “인생에 기회는 세 번 오는 게 아니라,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끝없이 찾아온다”며 “좌절하는 대신 ‘다음 기회가 또 온다’는 생각으로 들이대라”고 주문했다.

 윤 사장은 2006년 보르도 TV를 탄생시키며 삼성 TV를 세계 1위에 올려놓은 공으로 이듬해 TV사업부장이 됐다. 지금까지 삼성 TV는 7년 연속 세계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모두가 말릴 때 오히려 고가의 발광다이오드(LED) TV를 내놓아 큰 성공을 거뒀다. 그는 “한계라고 느낄 때 도망가지 말고,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느낄 때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자세로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살다 보면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만날 것이고,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는 일이 더 많을 겁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열정과 노력으로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분명히 이뤄집니다.”

 그가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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