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주현 공연보고 "참 잘한다"고 말했다가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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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승우의 ‘닥터 지바고’와 함께 최근 최고 화제작인 뮤지컬 ‘엘리자벳’을 봤다. 옥주현(사진)이 출연한다. ‘물이 올랐다’는 표현이 딱 맞게끔, 잘 한다. 특히 1막 후반부, 테마곡 ‘나는 나만의 것’을 부를 땐 소름이 끼쳤다. 중간 휴식 때 주변에선 “웬일이래, 옥주현 원래 저렇게 잘했니”라면서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작품 하나 잘 했다고 옥주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확 달라질지는 모르겠다. ‘옥주현 안티’가 일반인 가운데 많듯, 뮤지컬 쪽에서도 옥주현은 욕을 먹는 편이다. 아니 더 심하다.

지난해 ‘아이다’가 공연 취소 됐을 때, 그토록 시끄러웠던 것도 원인 제공이 옥주현이라서였다. 지난해 말 뮤지컬 팬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있었는데, 거기서 옥주현은 ‘2011년 최악의 배우’로 선정됐다. 뮤지컬 바닥에서 “나 옥주현 좋아”라고 하는 건 요즘 분위기에서 “나 MB 좋아”라고 말하는 것과 흡사한 셈이다.

 왜 싫어할까. 성형을 이유로 들곤 한다. 하지만 성형수술 한 이가 어디 하나 둘인가. “싸가지 없다”란 말도 들린다. 그래서 옥주현과 일해 본 몇 명에게 그의 ‘성격’을 물어봤다. 반쯤은 “털털하다”고 했고, 반쯤은 “공주병이 있긴 하죠”라고 했다. 이 정도면 평범한 거 아닌가. 설사 옥주현이 진짜로 ‘싸가지 없다’고 치자. 그게 또 무슨 상관이랴. 내가 그의 가족도, 코디네이터도, 매니저도 아닌데.

그렇다면 자명하다. 그가 싫은 이유? 딱히 없다. 그냥 미운 거다. 밉기 때문에 미운 거다.

 누군가를 이유 없이 미워해도, 사실 괜찮다. 우리가 언제 이유가 있어 사랑에 빠지던가. 옥주현 싫어한다고 해서 쇠고랑 안 찬다. 경찰차 출동 안 한다. 좋고 싫은 건 취향이다. 여기서 끝나면 뭐라 안 한다. 정작 문제는 ‘좋고 싫다’라는 취향이 ‘잘 한다 못 한다’라는 평가와 혼용되는 데 있다. 취향이 감성에 해당한다면, 평가는 이성이다. 둘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 두 가지를 헷갈려 한다. 속내는 싫어하는 건데 겉으론 “못 한다”라고 떠든다. 그건 잘못된 거다. 싫어도 “잘 한다”라고 칭찬할 수 있고, 좋아도 “못 한다”라고 쓴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하건만, 우린 취향과 평가를 동일시한다. 그러니 “못 한다”라고 얘기했다간 “너 나 미워하지”라며 펄펄 뛰는 거다.

 이건 어딘가 우리 사회 일반적 모습과 닮지 않았을까. 내 편이니깐 무조건 옳다라고 하는 일종의 ‘진영 논리’ 말이다.

하지만 합리적 인간이라면, 성숙한 사회라면 내 편이라도 각을 세울 줄 알아야 하고, 적이라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좌파라도 돈을 준 곽노현에 대해선 욕을 해야 하고, 우파라도 내곡동 사저를 몰래 지은 MB에 대해선 고개를 돌려야 한다.

 어쩌면 ‘연예인 옥주현’에게 우린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따분한 일상에 이토록 화제거리를 주니 말이다.

난 ‘인간 옥주현’은 잘 모르겠다. 과거 인터뷰했을 때도 딱히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무대 위 옥주현은 눈부셨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얄미워도 인정해야 함을. ‘배우 옥주현’은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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