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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놀란 왕수의 건축 “1주간 그리지 않고 생각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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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전통과의 접목. 왕수의 작품 세계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에 지은 ‘닝보(寧波)관’도 그랬다. 대나무에서 모티브를 얻은 외벽, 구멍난 벽으로 바깥 풍경을 끌어들인 구조는 중국 전통 산수화의 시점을 건축으로 끌어들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작가 푸싱]

“내 작업 과정은 중국 산수화가들과 비슷하다. 도시·산맥을 연구하고, 일주일간 그리지 않고 생각만 한다.”

 대표작인 중국 저장성(浙江省) 닝보(寧波)역사박물관을 설계할 때도 그랬다. 중국 건축가 왕수(王樹·49·사진)는 “잠 못 이루던 밤 하루 만에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즉시 종이에 연필로 각 공간의 구조와 크기까지 쓱쓱 그리고는, 차를 한 잔 마셨다”고 회고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올 프리츠커(Pritzker)상은 중국의 전통에 뿌리 박고 있는 왕수에게 돌아갔다. 왕수는 1963년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 지역에서 태어났다. 음악가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는 아들 교육을 위해 4000㎞나 떨어진 베이징으로 나흘씩 기차를 타고 여행가기도 했다. 난징(南京) 공대에서 건축을 전공한 뒤 항저우(杭州)에서 활동했다. 역시 건축가인 부인 루웬유와 ‘아마추어 건축 사무소’를 운영했다. 그는 중국 전통을 중시하는 건축가다. 쑤저우(蘇州)대학 도서관을 지을 때는 건물 절반을 지하에 둬 주변 자연을 압도하지 않도록 했다. 중국미술학원 샹산(象山)캠퍼스를 지을 땐 철거한 전통 가옥에서 나온 기와 200만장으로 지붕을 덮었다. 해외에서 작품 활동을 한 적은 없다.

 중국서 나고 자라 활동하는 ‘토종 중국인’이 이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1983년 중국계 미국인인 I.M.페이가 수상한 적은 있다. 시상식은 5월 25일 베이징에서 열리며, 수상자에게는 10만 달러(약 1억 1000만원)의 상금과 메달이 주어진다.

 ◆건축도 차이나 파워=세계 건축계의 스타가 아닌 국내파 중국인의 수상은 파격이다. 상을 주관하는 하얏트 재단의 토마스 프리츠커 이사장은 “건축적 이상 실현에 이제 중국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사위원단도 직접 중국을 방문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영국의 팔럼보 경은 “우리는 의심할 여지 없는 거장의 작품을 거기서 봤다. 만장일치로 왕수를 올해 수상자로 정해, 과거 수상자인 또 다른 중국 건축가 I.M.페이와 같은 반열에 올렸다”고 밝혔다.

 중국의 경제적 위상이 날로 높아가고, 그에 따라 커가는 중국 건축시장을 무시할 수 없었을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을 방문 중인 건축가 승효상씨는 “중국은 최근 10년간 해외 유명 건축가들의 각축장이었다. 중국 건축시장의 비중이 날로 커가고 있지만 이런 큰 상까지 받다니 놀라움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번 수상으로 중국은 미술 뿐 아니라 건축에서도 세계의 주목을 끌게 됐다. 일본은 이미 단게 겐조(1987년 수상)를 비롯해 마키 후미히코(1993년), 안도 다다오(1995), 세지마 가즈요(2010) 등 네 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아직 한국 수상자는 없다. 서울시립대 김성홍(건축학) 교수는 “수상자 배출을 위해선 그 서클 안에 들어가야 한다. 이번 심사엔 베이징대 건축과 교수 출신으로 미국 MIT 교수로 간 중국인 장융허(張永和)가 참여했다. 역대 심사위원단엔 일본인도 여럿 있었으나 한국인은 아직 심사에 참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al Prize)=해마다 인류와 환경에 중요한 공헌을 한 건축가에게 주는 상. 건축 분야 최고 권위의 상으로 꼽힌다. 하얏트호텔 체인을 소유한 하얏트재단 전 회장 제이 A 프리츠커(1922~99) 부부가 1979년 제정했다. 오스카 니마이어·프랭크 O 게리·알바로 시자·페터 줌토르·렘 쿨하스 등 세계 유명 건축가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단의 평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칠레 건축가)

“급속한 도시화를 겪는 중국에서 건축가들은 과거 전통에 무게를 둬야 할지, 시선을 미래로만 향해야 할지 고심 중이다. 여느 거장들처럼 왕수는 이런 논의를 초월해, 건물을 짓는 일은 시간을 넘어서는 일이며, 지역적인 동시에 보편적임을 보여준다.”

▶장융허(張永和, 중국 건축가, MIT 건축과 교수)

“지역의 문맥에 뿌리박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도 섬세하다. 왕수의 작품은 ‘중국 건축은 시장에 끌려가는 따분한 덩어리들의 집합 혹은 서구 입장에서 이국적인 것들의 반복’이라는 통념을 깬다.”

▶ 자하 하디드(이라크 출신 영국 건축가, 2004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조각적 힘과 맥락적 섬세함을 겸비하고 있다. 전통적 재료와 모티브를 활용한 왕수의 작품은 매우 독창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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