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 목숨 걸린 장비 '중국산 짝퉁'으로 폭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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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주파수 교란장비가 장착된 군 용차량 험비(HMMWV). 차량 뒷부분의 안테나가 폭파장치의 주파수 교란 역할을 한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오쉬노 부대에 보낼 대(對)테러용 주파수 교란장비를 엉터리로 만들어 납품한 뒤 정부 예산 10억3500만원을 받아낸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부사관 출신 군납업자 김모(33)씨를 구속했다고 27일 밝혔다.

 특수부대에서 7년간 EOD(explosive ordnance disposal·폭발물처리반) 업무를 했던 김씨는 저가 중국산 부품으로 만든 장비를 미국산 첨단장비라며 미국 소재 유령법인 명의의 허위견적서를 제출하는 등 총 5대를 납품하고 정가보다 4배가량의 폭리를 취한 혐의다.

 경찰은 또 김씨에게 레바논 동명부대에서 운용 중인 주파수 대역을 누설한 현역 소령 권모(35)씨 등 2명, 김씨가 납품한 장비의 문제점을 알고도 묵인한 방위사업청 소속 허모(43) 중령 등 모두 4명의 군인을 국방부 조사본부에 넘겼다.

 주파수 교란장비는 아프간 탈레반 등 테러범들이 설치한 폭발물의 주파수를 교란해 무력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연간 3307건의 테러가 발생하는 아프간 현지에서 우리 장병의 생명을 보호하는 필수 장비인 셈이다. 대통령 의전 차량행렬 등을 보면 검은색 밴 위에 긴 안테나가 있는데 이 장비가 주파수를 교란해 주변의 폭파장치를 차단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장비도 군용차량인 험비(HMMWV·high mobility multipurpose wheeled vehicle)에 장착해 사용한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김씨가 납품한 장비는 일반 차량의 리모컨 주파수도 교란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정부의 발주 조건이 반경 200m 이내에서 20~2500MHz 대역의 모든 주파수를 차단해야 하고 12시간 동안 지속 운용돼야 한다는 것인데도 이 제품은 성능 테스트 2시간 만에 고장 났다.

그런데도 방위사업청 허 중령은 실제 운용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며 합격 판정해 직권을 남용한 혐의다. 문제의 장비는 정부에 납품됐으나 아프간 현지에 공급되기 전에 적발됐다.

 또 권 소령은 레바논 동명부대 주둔지에서 e-메일로 우리 군이 현재 사용 중인 영국제 주파수교란장비의 주파수 차단대역과 장비 제원표 등 군사기밀을 김씨에게 보내 범죄를 도운 혐의다.

박성우 기자

오쉬노 부대가 쓰려던 주파수 교란장비는 중국산 짝퉁
테스트 2시간 만에 고장
싸구려 부품으로 정가 4배 폭리
특수부대 출신 업자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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