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에 묻어있는 이중섭의 삶과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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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한 천재는 신화가 된다. 이중섭(1916~56.사진)은 20세기에 태어나 신화로 자리잡은 거의 유일한 한국 화가다. 그래서 그의 예술작품보다 궁핍하고 비극적인 생애가 한동안 사람들 사이에 더 큰 관심사였다.

〈이중섭 평전〉〈화가 이중섭〉등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다룬 책 대부분도 시대를 잘못 타고난 천재의 불우함에 비중을 뒀다.

가장 최근에 나온 〈이중섭〉(오광수 지음.시공사)만이 예술에 초점을 맞춰 이중섭보기를 시도했을 뿐이다. 생에 가려 오히려 작품의 진정한 가치가 가려지는 것을 아쉬워한 미술사가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중섭, 그대에게 가는 길〉은 다시 우리의 관심을 인간 이중섭으로 돌려놓는다.

다만 이전의 책들이 주변의 증언과 그가 남긴 편지를 바탕으로 한 평전이라면, 이 책은 말미의 짧은 해설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그가 주고 받은 편지와 그림으로만 채워있다는 차이가 있다.

이중섭이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에게 쓴 편지를 통해 화가 이중섭은 물론 남편 이중섭.아버지 이중섭의 따스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아내를 '발가락군' , 자신을 '아고(턱의 일본어) 리' 라는 별명으로 표현한 편지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 편지를 쓴 시기는 1953~55년. 사랑하는 일본인 아내 남덕(일본이름 마사코)씨가 유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일본에 가면서 현해탄을 오가는 사랑편지가 시작됐다.

'당신을 힘껏 포옹하고 몇 번이고 입맞추오' '태현, 태성에게 뽀뽀를 하나씩 나누어 주구려' 등 가족을 향한 사랑은 물론 '새로운 예술을 창작할 자신으로 부풀어 있다' 는 예술가로서의 포부도 함께 만날 수 있다.

한편 '이내 가게 될 거요' '도쿄에 가서 자전거를 사줄께' 라는 지키지 못한 수많은 약속들은, 그가 아무도 지켜보지 않은 병실에서 홀로 숨을 거두었음을 아는 독자들을 안타깝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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