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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F] 부산국제영화제 이모저모 (6일째)

중앙일보

입력

PIFF 오전 스케치

영화제의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지금 아침 하늘은 상쾌하다. 가을 날치고 좀 더운게 아닌가 싶은 날씨지만 PIFF 광장은 어제와 변함이 없다.

아침부터 밤새 잠들었던 부스들을 깨우기 위해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사람들과 첫 상영작(11시)을 보기위해 서둘러 뛰는 사람들.극장앞 벤치는 언제나 기다림의 설레임을 품은 사람들로 만원이다.

오전, 첫 상영작 상영관을 둘어보면 좌석 여유가 있다. 이 날 오전에 유독 눈에띄는 사람들은 중년의 아줌마 부대들. 아침에 가족들 출근과 등교시키고 집안정리를 끝낸 친구들과 삼삼오오 몰려들고 있다.

그녀들의 표정은 젊은이들 못지 않게 활기에 차있고 수다는 연륜만큼이나 주위사람들을 앞도하고 있다. PIFF의 오전은 여유로움 속에서 꿈틀거림을 느낄 수가 있다.

영화가 보고 싶어요!

관람객들끼리 자유롭게 표 교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게시판에는 시시각각 새로운 사연들이 등장한다.

PIFF 첫 날엔 화이트보드 게시판에 펜을 구비해 두지 않아 관람객들이 각자의 펜으로 글을 적어 게시판이 지저분 해지자, 다음 날 부터 조직위측에서 펜을 구비.

게시판 담당 자원봉사자는 "펜을 3개 구비해 놓았는데 지금까지 없어진 게 하나도 없다" 며 "대신 가끔씩 개인이 가지고 온 유성펜으로 글을 쓰는 경우가 있어, 지우느라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게시판 상단에는 '유성펜으로 적을시 화이트보드 변상'이라고 엄포성 글도 적혀 있다.

게시판에 적힌 사연들은 "폐막작 〈화양연화〉표 2장 구합니다. 2장이 안되면 한장이라도, 멀리 중국에서 왔습니다. 꼭 좀 부탁합니다. 저 한국말 잘합니다."라며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겨놓은 사람.

"〈사랑에 관한 이야기〉표 두장 구합니다. 서울서 왔는데요. 표가 다 매진이래요, 흑흑흑. 제발 좀 부탁할게요!!" 라며 애교로 호소하는 사람 등의 사연도 있다.

하지만 게시판에는 표를 팔겠다는 사람보다 사겠다는 사람들이 대부분.

취재하는 분들이 거의 없네요

PIFF 광장에서 프레스 카드를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들은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취재를 하는 기자들을 만나기란 매진표 구하기 만큼이나 힘든게 사실이기도 하다.

한 눈에 봐도 취재를 하러온 복장이 아니라 관광객 복장으로 PIFF광장을 누비는 정체불명의 기자들을 볼때면 씁쓸하다. 그나마 밥값한다는 사람들은 극장안으로 들어가 영화보고 기사를 쓰기도 하는데,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 아닐까.

개막전 국내외 프레스 카드 신청이 1천명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중 PIFF를 취재하기 위해 신청한 회사는 현재 10%도 안되어 보인다. 언론사도 아닌 온라인 업체들이 대량으로 발급 받았다는 소문이 떠돌 정도이니.

이 날도 광장을 돌며 하루에도 여러번씩 만나는 안내 자원봉사자들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잠시 얘기를 하던중 "취재를 혼자만 하세요?"라고 질문을 받았다. 순간 "예?"라고 반문하니 "아니요, 취재하러 다니는 분이 거의 없는 것 같아서...."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안내봉사자가 미안해 하는 것 같아 기자가 그녀에게 "그렇죠? 하루에 PIFF 광장 20바퀴쯤 순찰하는데 저도 취재하는 기자를 아직 못봤어요."라고 답하니, 웃는다.

가끔씩 나타나 카메라를 휘두르거나, 알려진 행사가 있으면 어디서 나타나는지 출현했다가 몇자 끄적이고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 그러나 기자들을 위해 무료로 발급하는 프레스티켓 창구는 지금도 붐비고 있다.

극장안 풍경

PIFF의 극장에서는 상영전 자원봉사자가 나와 한국어로 영화에 대해 간략한 소개와 영어로 소개를 한다. 그리고 극장내에서 지켜야 할 사항들에 대해서도...

하지만 지각생은 언제나 있기 마련. 이 날도 상영이 시작된 후 늦게 들어와 어둠 속에서 자리를 찾느라 방황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어둠 속에서 자리 찾기가 그리 쉬운가? 남의 발을 밟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남의 팝콘 음료수 쏟기도 하고.

어떤 자원봉사자는 기자에게 "영화는 지겨울 때도 있는데, 극장안에서 문제 일으키는 사람들은 언제나 긴장되고 또한 재미있다."고 말해 한국의 극장 문화를 대변하기도 했다.

동성애 커밍 아웃 지지서명 부스 등장

저녁이 되면서 새로운 부스가 등장했다. "홍석천의 커밍 아웃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임". 서울에서 내려온 이들은 전날까지 서울 퀴어영화제 홍보부스를 점령(?)해 동성애에 대한 지지서명과 기금을 모금하고 있다.

잠시후 서울에서 도착한 홍석천씨가 PIFF 광장에 나타나자 많은 사람이 환호로 맞았고, 이로 인해 서명작업이 한결 수월해지는 표정. 600명정도가 서명을 했다고 밝힌 관계자는 "이대로 가면 예상을 훨씬 초월할 것 같다"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현장에서 모금되는 기금은 커밍아웃 지지모임의 운영비로 쓸 계획이라고...

서명하는 사람들 옆에 서서 그들을 지켜보노라니 새삼 시대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의외로 나이 많은 분들도 눈에 띄었는데 그 분들의 답변중 공통점은 "왜 남의 일에 간섭하느냐, 우리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되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가 "댁의 자녀가 동성애를 한다면 어떡하실래요?" 라고 물으니 그들은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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