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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공만 한 홀에 100번 연속 퍼팅 성공 ‘올드 맨’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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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호 19면

한 해에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한 최초의 그랜드슬래머 보비 존스(미국). 그의 퍼팅 스승이었던 월터 트래비스(1862~1927)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호주에서 태어난 트래비스는 23세 때 미국 경제의 심장인 뉴욕으로 건너와 건자재 사업을 했다.

박원의 비하인드 골프 <3> 스키넥터디 퍼터의 전설 월터 트래비스

트래비스가 서른다섯 살이 됐을 때쯤 미국에서도 본격적으로 골프가 시작돼 그 역시 자연스럽게 골프를 접하게 됐다. 하지만 키 1m70㎝, 몸무게 63.5㎏밖에 나가지 않는 신체적 열세 때문에 드라이브 샷을 멀리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퍼팅에 엄청난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연습그린에 골프공만 한 크기의 홀을 뚫어 놓고 100번 연속 공이 들어갈 때까지 연습했을 만큼 승부욕이 대단했다. 그 때문에 당시 골퍼들 사이에서는 ‘늙은이(The Old Man)’로 통했다.

트래비스는 1900~1902년 US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3년 연속 우승했고 1902년 아마추어로 출전한 US 오픈에서는 2위를 하면서 미국 최고의 골퍼로 떠올랐다. 1904년에는 배를 타고 유럽골프 정벌에 나서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했던 브리티시 아마추어 챔피언십에 참가했다. 하지만 대회장에서 분신 같은 퍼터를 잃어버린다. 트래비스는 마침 미국 뉴욕주 스키넥터디에서 온 친구를 우연히 만나 그의 퍼터를 빌려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그런데 바로 그 퍼터가 세계 골프 역사상 가장 유명한 퍼터로 손꼽히는 ‘스키넥터디(Schenectady) 퍼터’다.

이 퍼터는 당시로선 혁신적인 디자인이었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퍼터 헤드 가운데 샤프트가 꽂혀 있는 센터 샤프트 타입에 헤드 재질마저 금속이었다. 힐 쪽에 샤프트가 꽂힌 나무 재질 퍼터를 사용하던 시절이었음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퍼터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 퍼터는 큰 불씨를 낳았다.

월터 트래비스와 그가 썼던 스키넥터디 퍼터.

트래비스는 이 퍼터로 사상 처음 영국인이 아닌 선수로서 브리티시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이로 인해 스키넥터디 퍼터의 전설이 됐다. 자존심이 무척 상한 영국 선수들은 왕립골프협회(R&A)의 전신인 로열&에인션트로부터 1912년 센터 샤프트에 금속 헤드가 장착된 퍼터 사용을 금지하는 결정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미국골프협회(USGA)가 이를 거부했다. 이로써 이 사건은 골프규칙을 제정하는 세계 양대 골프협회 간 최초의 균열과 불화로 기록됐다.

영국에서 우승한 직후 트래비스는 퍼팅의 기술(The Art of Putting)을 저술했는데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아직까지도 가장 훌륭한 퍼팅 레슨 서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 골프 무대에서 독주해 오던 트래비스는 54세이던 1916년 은퇴한 뒤 20년대 초반 보비 존스의 퍼팅 스승으로 활약했다. 존스의 퍼팅 그립과 스탠스, 스트로크 등 모든 것을 완성시킨 주인공이 그였다. 선수로서 그는 크고 작은 대회에서 500회 이상 우승했다. 특히 절대 포기하지 않는 승부 근성 때문에 매치 플레이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

1927년 골프 일러스트레이티드에 실린 존 코포에드의 ‘숫자가 증명한다(The Figures Prove It)’라는 자료에 따르면 트래비스는 40회 이상 메이저 대회의 매치플레이에 참가한 선수 가운데 45승11패로 제자인 존스(42승9패·승률 82%)에 이어 둘째로 높은 승률인 80%를 기록했다.

그는 말년에 자신이 아끼고 사랑했던 가든시티 골프클럽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골퍼들과 담배 내기 퍼팅으로 여생을 보냈는데 지는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던 붉은색 재킷에 챙이 넓은 모자를 걸치고 플레이했으며 리코로 코로나 담배를 즐겨 피웠던 ‘늙은이’는 1927년 콜로라도에서 여생을 마쳤다. 세계 골프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은 79년이다.

세계적인 퍼팅 전문 교습가 제프 맹검은 “골프는 롱게임도 쇼트게임도 아닌 스코어링 게임이다. 퍼팅 연습을 하고 난 뒤 쇼트게임 연습을 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롱게임 연습을 하라. 트래비스는 이 원칙을 가장 철저히 실천한 골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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