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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일하는 시간 줄이면 일자리 늘어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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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해 근로시간을 연장하는 관행을 고쳐 근로시간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근로시간을 제도적으로 단축하면 생산성을 높이고 일자리를 나눌 수 있다는 주장과 고용비용만 늘리고 임시직만 양산할 것이라는 전망이 맞서고 있다. 양측의 주장을 들어본다.

장시간노동관행, 방치할 수 없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시간 노동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완성차업체의 장시간 노동에 대한 근로감독 실시, 연장근로 및 휴일근로 제한을 위한 법 개정과 근로시간 및 휴식시간 특례업종의 대폭 축소 등을 추진해 왔다. 그 배경에는 2010년 현재 한국 취업자의 연간 근로시간이 219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길 뿐만 아니라 실제 체감 근로시간은 그보다 훨씬 더 길다는 현실이 있다.

 먼저 법과 제도 간의 부조화 문제다. 법정 근로시간이 2004년 주 40시간으로 단축된 이래 지난해 7월 마지막 적용 유예 사업장이었던 20인 이하의 소규모 사업장까지 주 40시간제가 적용되면서 본격적인 주 5일제 시대를 맞게 됐다.

그러나 현실은 연장근로·휴일근로를 통해 장시간 노동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엔 연장근로와는 별개로 운영되고 있는 휴일근로제도와 연장근로를 무제한 가능하게 하는 근로시간 특례업종의 과도한 비중 등 근로시간 단축 취지를 무력화하는 불합리한 법제도가 한몫하고 있다.

 근로자들에게 휴식과 여가를 보장해 건강을 보호하고 일과 가정, 직장과 개인생활의 조화를 통해 선진적인 사회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도 근로시간 단축은 불가결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이 결과적으로 잔업과 휴일근로를 확대해 근로자들의 추가 소득을 늘리는 데만 기여할 뿐이다.

 장시간 노동이 우리 경제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도 냉철하게 따져야 한다. 장시간 노동이 고용률과 노동생산성에 반비례한다는 경험적 분석은 이미 나와 있다. 우리나라의 고용률은 우리와 비슷하게 장시간 노동을 하는 그리스·멕시코 등과 함께 가장 낮은 수준에 속한다. 더욱이 전체 취업자의 평균 근로시간과 국내총생산(GDP)을 토대로 산출한 노동생산성은 OECD 평균의 62% 수준이다.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근로시간을 단축한다면 일자리 증가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법률상의 근로시간제도를 준수하면서 생산성을 높이고 그 성과를 보상받을 수 있는 선진적 노동문화 구축이 절실하다. 경기 상황에 따라 생산량 조절이 필요하다면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연장근로와 유연근로시간제를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현행법이 그와 같은 합리적 노동문화를 제대로 유인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현행법 중에 기업들이 유연근로시간제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게 하는 문제점이 있다면 이를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또 연장근로가 근로자의 소득보전용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연장근로한 시간을 저축해 휴일이나 휴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도 도입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의 개선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근로자 및 기업 부담을 고려해 합리적이고 단계적으로 추진돼야 하고 그 바탕 위에서 노사 협력을 끌어내야 한다. 현실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가장 고통받을 근로자는 아무래도 영세한 중소기업의 저임금 근로자들일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 효과가 모든 근로자에게 미치기 위해선 중소기업 근로자의 저임금 구조의 원인을 찾아내 개선해 가는 노력이 함께 있어야 할 것이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무겁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근로시간 단축, 임시직만 양산한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 실장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4일, 행정해석에 근거해 그간 연장근로로 간주되지 않던 휴일근로를 연장근로 한도 산정에 포함함으로써 장시간 근로 관행을 고치겠다고 밝혔다. 사실 한국의 근로시간이 긴 것은 사실이다. 자영업자를 제외한 임금 근로자만 보더라도 연 2111시간 근로하는 것으로 나타나 칠레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길다.

이러니 정부가 나서서 근로시간을 강제로라도 단축하고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또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눠 고용창출까지 된다니 일석이조겠지만 이런 희망사항의 이면엔 제대로 된 일자리가 생기기 어렵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일자리 나누기의 기본 목적은 노동비용 절감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면서 불황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임금 인하나 근로시간 감축이 사용된다.

 임금 인하로 노동비용을 줄이는 형태는 1980년대 미국 자동차노조(UAW)와 빅3 간에 합의됐던 일자리 나누기가 대표적이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비용을 절감하고 고용을 유지하는 형태는 90년대 초 독일 폴크스바겐이 대표적이다. 기업 입장에선 대량해고로 인한 인적자본의 손실을 막을 수 있고 근로자 입장에선 실직을 피할 수 있는 방법들이다.

 고용유지를 넘어 고용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일자리 나누기도 있다. 기존 직원의 임금 삭감을 통해 신규채용 여력을 확보하는 형태는 지난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 공공부문에서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신규고용의 상당 부분이 인턴과 같은 임시직이란 부작용이 따랐다. 임금 인하보다 주로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비용을 절감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유형도 있다. 80년대 네덜란드에서 범사회적 합의를 통해 시행한 바세나르(Wassenaar) 협약이 그 예다. 그러나 당시 창출된 일자리의 80% 이상이 임시직이었다.

 이처럼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고용유지를 넘어 고용을 창출할 경우 새롭게 생긴 일자리의 대부분이 임시직인 까닭은 무엇일까? 불경기에 임금 인하나 근로시간 단축으로 노동비용을 절감한다 해도 기업 입장에서는 경기회복이 불확실하고 미래에 닥칠 또 다른 불경기에도 정규직 인력을 유지해야 하는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근로시간 단축 및 일자리 나누기를 강제할 수는 있어도 정규직 일자리가 많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이는 일자리 나누기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 중 가장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현재 한국의 고용상황은 어떠한가? 지난 1월에는 1년 전과 비교해 무려 53만60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져 경제위기란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회적으로 일자리 문제가 큰 관심이 되는 이유는 일자리 총량이 부족하기보다는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자리 질’이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만약 강제로라도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일자리를 나눠 정규직 일자리가 생기기를 기대한다면 문제의 근본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강제로라도 일자리를 만들려고 애쓰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 유인을 제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