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사내 하청 32만 명 … 비슷한 소송 확산 가능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대법원이 23일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해 승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을 듣고 나온 하청업체 관계자들이 대법원 현관에서 환호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사내하도급업체 근로자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결에 산업계가 출렁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은 “도급계약에 근거한 정당한 업무협조를 파견 노무지휘로 보는 등 산업현장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 다양한 근로 형태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종현 전경련 고용복지팀장은 “판결을 준용한 사내 하도급 판결이 잇따라 나올 경우 노사 관계에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며 “소송건수가 많아질수록 사회적 비용 또한 증가해 생산성 향상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패소 당사자인 현대차는 공식적으로 “판결문을 분석한 뒤 조치를 취하겠다”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우려하는 분위기는 역력했다. 현재 전체 근로자의 20%에 해당하는 8000여 명이 사내하도급업체 소속이어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이들을 모두 정규직화하면 경기가 좋아 주문이 밀려들 때야 상관이 없지만 경기가 바닥을 칠 때나 외환위기처럼 예상치 못한 외부 충격을 받으면 대응 수단이 없어진다”며 “기업은 딜레마에 빠지고 생존도 위협받는다”고 말했다.

 사내하도급 비율이 높은 조선과 철강업계는 판결을 예의주시하면서도 자동차업종과는 선을 그었다. 이 업계는 사내하청 근로자가 현대차의 노무지휘를 직접적으로 받는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대법 판결에 주목하고 있다. 즉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정규직과 사내 하청 근로자가 혼재되어 있는 상태라면 사내하청 근로자는 현대차 관리자의 노무지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조선·철강업체의 경우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독립된 장소에 모여 별도의 블록(선박의 일부)이나 철강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원청업체 관리자의 지휘를 직접적으로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처럼 사내하청 근로자가 정규직 파견 근로자로 인정받으려면 직접적인 노무지휘를 누구로부터 받는지를 가리는 게 관건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도급계약을 맺을 때 사내하도급업자가 블록을 별도의 장소에서 제작하기 때문에 정규직 근로자와 함께 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재계와는 달리 노동계는 판결을 환영했다. 한국노총은 “제조업에서 관행으로 묵인돼 온 불법파견을 금지하는 길이 열렸다”며 “현대차는 사내하도급 노동자들을 하루 빨리 직접 고용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민주노총도 “이번 판결을 바탕으로 정부와 재벌은 사내하도급이라는 위장된 형태의 간접고용 확대정책을 폐기하고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문용문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장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불법파견 해당자를 파악해 문제해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사내하청 근로자 수=고용노동부의 2010년 실태조사 결과, 300인 이상 사업장 가운데 41.2%(1939개소)가 사내하청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고, 이들의 총 인원은 전체 근로자의 24.6%인 32만5932명이다. 업종별로는 조선(61.3%), 철강(43.7%), 화학(28.8%), 기계·금속(19.7%), 자동차(16.3%) 등 대부분의 제조업종에서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중이 두 자릿수 이상을 차지한다.

◆도급과 파견근로=파견근로와 도급은 작업지시와 근로감독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파견을 받은 사업체가 작업을 지시하고 근로 감독을 하는 경우는 파견근로, 소속된 업체의 지시를 받는 경우는 도급에 해당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