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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없어도 두려움 없다 … 우리는 홍명보 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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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홍명보 “내 축구 인생 최고 헹가레” 올림픽대표팀 선수들이 23일(한국시간) 오만 무스카트의 알시브 스타디움에서 오만을 3-0으로 완파하고 올림픽 7회 연속 진출을 이뤄낸 뒤 홍명보 감독(위)을 헹가래치며 기뻐하고 있다. [오만 로이터=뉴시스]

때론 협력했고, 때론 경쟁했다. 그리고 서로를 믿었다. 함께 있을 때 그들에겐 두려울 게 없었다. 한국 올림픽축구대표팀이 2012 런던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는다. 올림픽팀은 23일(한국시간) 오만 무스카트의 알시브 스타디움에서 열린 런던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5차전에서 오만에 3-0 완승을 거뒀다. 5경기를 치르며 3승2무를 기록해 승점 11점을 쌓은 한국은 2위 오만(7점)에 4점 차로 앞서 있다. 3월 14일 카타르와의 최종전 결과에 상관없이 조 1위를 확정해 런던행 티켓을 받았다.

 올림픽팀은 4년의 숙성 과정을 거쳐 탄생한 ‘발효 가족’이다. 2009년 홍명보 감독이 20세 이하(U-20) 대표팀 사령탑에 오르며 인연이 시작됐다. 이집트 U-20 월드컵(2009년), 광저우 아시안게임(2010년), 런던 올림픽 아시아 지역예선(2011~2012년) 등 큰 무대를 차근차근 거치며 감독과 선수들이 함께 성장해 왔다.

 올림픽팀에는 간판 스타가 없다. ‘스타 개인’ 대신 ‘팀 전체’에 무게를 싣는 홍 감독 특유의 운영 방식 때문이다. 대신 모든 선수가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그라운드에 오른다.

 멤버 중에는 흥미로운 성장 스토리를 품은 인물도 적지 않다. 오만전에서 전반 15초 만에 결승골을 터뜨린 남태희(21·레퀴야)는 전화위복의 주인공이다. 그는 2009년 홍 감독 눈에 띄어 U-20 상비군에 한 차례 이름을 올린 적이 있지만, 최종 엔트리에 오르지 못했다. 조광래 전 감독 시절 A대표팀에 전격 발탁됐지만,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그라운드를 밟긴 쉽지 않았다. 기회는 이적과 함께 찾아왔다. 출장 횟수를 늘리기 위해 발랑시엔(프랑스)을 떠나 레퀴야(카타르)로 건너간 직후 올림픽팀 멤버들과 함께 중동 원정 중이던 홍명보 감독의 눈에 띄었다. 천우신조로 잡은 찬스에서 그는 값진 골을 넣었다.

 ‘제2의 박지성’ 김보경(23·세레소 오사카)은 올림픽을 위해 유럽 진출까지 미뤘다. 지난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클럽과 독일 분데스리가 중상위권 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지만 “올림픽 메달 획득에 전념하고 싶다”며 고사했다. 올림픽이 끝나는 8월 이후엔 유럽행 비행기를 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김민우(23·사간 도스)는 심각한 병마를 딛고 올림픽팀의 핵심 멤버로 컴백했다. 운동선수로서는 치명적인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앓아 재기가 불투명했지만, 흔들림 없는 정신력과 꾸준한 노력으로 극복해 냈다. 발병 직후 ‘가만히 있어도 100m를 질주한 사람과 엇비슷한 수준의 호르몬이 나온다. 축구를 다시 못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던 그는 2년 만에 올림픽팀에서는 없어선 안 될 주축이 됐다. 김현성(23·서울), 백성동(21·주빌로 이와타) 등 공격자원들은 올림픽팀 코칭스태프가 발굴한 ‘원석’이다. 또래 선수들과 견줘 주목도가 낮았지만, K-리그와 대학축구 무대를 두루 누비며 200여 명의 선수를 꼼꼼히 관찰한 코칭스태프의 열정 덕분에 올림픽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골로 보답한 두 선수의 노력도 성공 스토리의 배경이 됐다.

 본선행 확정 직후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은 홍 감독은 “내 축구 인생을 통틀어 가장 멋진 헹가래였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우리 선수들이 해낼 것으로 믿었다. 지금까지 그랬듯, 올림픽 본선에서도 서로 믿으며 함께 가겠다”는 말로 사상 첫 메달 획득에 대한 의지를 표현했다.

송지훈 기자

4년 동고동락 올림픽축구팀, 오만 잡고 7연속 본선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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