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 속에도 지지 않는 꽃, 보비 찰튼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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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성공적으로 프리미어 리그에 첫발을 디딘 찰튼은 55-56, 56-57시즌을 거치면서 팀에서 부동의 공격수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는 57년 FA컵 결승전서 아스톤 빌라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왜 보비 찰튼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필요한 선수인지를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시즌을 거치면서 찰튼은 더욱 출중한 기량을 선보이며 맨체스터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축구의 희망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은 승승장구하는 찰튼과 맨체스터의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1958년 2월 6일, 보비 찰튼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와 유럽의 축구팬에게 큰 슬픔으로 다가온 사건이 일어났다. 아직까지 잉글랜드 축구의 아픔으로 기억되고 있는 ‘뮌헨의 비극’. 뮌헨에서 출발한 런던행 비행기가 이륙도 해보기 전에 두 동강이 나는 대형사고가 터진 것이다.

당시 맨체스터는 유럽 최고의 클럽을 가리는 챔피언 컵에 출전하기 위해 유고에 있었다.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레드 스타스전에서 승리하면서 준결승 진출이 확정된 맨체스터 선수단은 승리에 들뜬 마음으로 귀국 길에 올랐다.

유고에서 선수단을 태우고 출발한 영국항공의 비행기는 연료 보급을 위래 독일 뮌헨을 경유했다. 당시 뮌헨은 대설로 기상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던 선수들은 승리에 대한 기쁨과 우승에 대한 자신감으로 들떠 있었다.

연료 보급을 나친 비행기는 다시 이륙하기 위해 눈 덮인 활주로를 향해 서서히 움직였다. 그러나 잠시 후 이륙에 실패한 비행기가 활주로를 지나쳐 비행장 외곽 벽에 충돌했고 거대한 불꽃을 일으키며 폭음과 함께 불타기 시작했다. 날개는 불에 연소되고 비행기 꼬리 부분은 떨어져 나가면서 잔해들이 눈 속으로 사라져갔다.

이 사고로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던 사람 중 21명이 현장에서 즉사했다. 그 중에는 “버스비 베이비”로 불리던 토미 테일러, 마크 존스 등 맨체스터의 주전 선수 7명도 포함돼 있었다. 다행이 버스비는 중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사고 발생 15일 후에는 사고로 중태에 빠졌던 잉글랜드 축구의 또 다른 유망주 던컨 에드워드마저 세상을 떠났다. 찰튼과 함께 “버스비 베이비”의 상징이었던 에드워드는 세계적인 기량을 지닌 선수였다. 에드워드는 불과 21살의 어린 나이에 자신의 기량을 다 펼쳐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하지만 보비 찰튼은 대형 사고 와중에도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 레드 스타전에서 맹활약한 덕분에 사고 당시 일등석에 타고 있었던 것이 그의 생명을 구했다. 비보 속에서도 찰튼의 생존 소식을 접한 잉글랜드 사람들은 “하늘이 그의 재능을 아껴 살려주었다.”며 그의 무사함을 기뻐했다.

부상에서 회복한 버스비는 아픔을 뒤로 하고 지미 머피 코치와 함께 보비 찰튼을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뮌헨의 비극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다. 주력 선수 대부분을 잃은 맨체스터는 결국 그 해 유럽 챔피언 컵 준결승에서 패하며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Joins 금현창 기자<lafirst@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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