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객 만나는 볼쇼이 안무가 그리가로비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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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재능과 천재성이 혼동될 만큼 '천재'라는 호칭이 남발되는 시대인지라 진짜 천재를 만나면 오히려 천재라고 부르기 민망할 때가 있다.

발레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일컬어지는 러시아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73)가 바로 그런 경우다.

"고전발레의 아버지 마리우스 프티파와 레프 이바노프 이후 20세기 최고의 안무가"라는 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의 설명을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1995년 내부갈등으로 볼쇼이발레단을 떠날 때까지 32년 동안 예술감독을 맡았던 경력만으로도 그의 비중을 가늠할 수 있다.

'위대하다'는 '볼쇼이'의 원래 뜻 그대로 볼쇼이 발레단을 세계를 대표하는 무용단으로 가꾸어낸 거물 그리가로비치가 앞으로 1년 동안 국립발레단과 함께 세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안무와 연출을 직접 맡아 12월 크리스마스 시즌 정기공연 〈호두까기 인형〉을 비롯해 국립발레단 1백회 특별공연 〈백조의 호수〉(2001년 6월), 〈스파르타쿠스〉(2001년 8월)를 잇따라 선보이는 것.

그리가로비치는 예술감독직 사임 이후 세계 유명단체들과 함께 공동작업을 해왔으나 아시아 발레단과 작업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발레단 신입단원 오디션(2~3일)과 〈호두까지 인형〉 캐스팅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리가로비치가 5일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회견에서는 특히 그의 대표작 〈스파르타쿠스〉에 관심이 모아졌다. 〈백조의 호수〉처럼 여자무용수 군무가 중심을 이루는 다른 고전발레와 달리 〈스파르타쿠스〉는 솔리스트 4명을 비롯해 최소한 38명의 남자 무용수가 필요할 정도로 남자 비중이 유난히 높은 작품.

단원의 질적 수준은 뒤로 하고 일단 남자 단원수가 불과 10여명에 불과한 국립발레단이 과연 어떻게 이를 소화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정작 그리가로비치 본인은 자신있는 표정이었다. "오디션을 통해 훌륭한 남자무용수들을 많이 뽑았다"며 "젊은 무용수들이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는 게 우선이지 숫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어차피 '작은 공항'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큰 무대에다 단원 2백50명을 가진 초대형 발레단은 볼쇼이 외에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면서 "상황에 맞춰 작업하는 게 안무자·연출자의 역할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전임 볼쇼이 예술감독인 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 등 수없이 많은 스타 무용수를 키워낸 대가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리가로비치는 영화 〈벤허〉를 연상케 하는 웅장한 스케일과 노예들의 역동적인 춤 등으로 창작발레 〈스파르타쿠스〉(68년작)를 볼쇼이, 더 나아가 20세기 고전발레의 대표작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은 실패한 기존 작품을 개정 안무하는 데서 훨씬 강하게 발휘되어 왔다. 그런 면에서 그가 〈스파르타쿠스〉와 함께 내놓는 〈호두까기 인형〉과 〈백조의 호수〉가 과연 어떤 모습일지에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구체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면서도 "극장은 살아 있는 유기체"라며 "아무리 뛰어난 작품이라도 시대에 따라 항상 변화를 주는 게 내 스타일"이라고 잘라 말한다.

동시에 "이번 한국공연에서도 안무를 부분적으로 바꾸겠지만 결코 예술적·기술적 양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발레학교 졸업 후 마린스키(키로프)극장 솔리스트로 활동하던 그리가로비치는 30세 때 〈석화〉를 안무해 러시아 발레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불과 34세 나이에 볼쇼이 발레단 예술감독을 맡아 볼쇼이에 머물면서 오늘날의 볼쇼이 신화를 이룩했다.

그리가로비치는 항상 젊은 무용수와 작업하는 걸 즐겼다. 무용수가 원래 갖고 있는 장점을 발굴해내는 방식 덕분에 볼쇼이는 더 많은 스타를 배출할 수 있었다.

방한 하루 전인 9월 30일 예술감독이 공석인 볼쇼이 발레단에 막강한 권한을 가진 객원안무가로 임명된 그리가로비치는 "2002년까지 모든 스케줄이 꽉 차 있지만 국립발레단과의 공연에는 차질을 빚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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