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오바마는 시진핑의 들러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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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1990년대 중반 일이다. 미국인 마크는 중국 푸젠(福建)성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하루는 한 학생이 그를 형 결혼식에 초대했다. 버스로 8시간 달려 식장에 도착한 마크는 깜짝 놀랐다. 신랑·신부는 물론 하객 모두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고, 맨 앞 테이블에 앉았다. 신랑·신부가 테이블을 돌며 하객에게 인사할 때는 함께 다녀줄 것을 부탁받았다.

 마크는 한동안 유명인사가 된 기분을 즐겼다. 그러다 정신이 들었다. 학생이 ‘결혼식 품격을 높여줘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을 때다. 파란 눈의 ‘그’라는 존재가 결혼식에 필요한 ‘이국적(異國的) 장식’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제임스 맥그레거의 『중국 비즈니스 최전선』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결혼식 사진에서도 마크는 혼례의 품격을 높이는 ‘병풍(屛風)’ 역할을 했을 것이다.


지난 14일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왼쪽)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중국 정치는 종종 사진으로 말한다.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웅변적이기 때문이다. 장군 출신의 사오화쩌(邵華澤·79)는 90년대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사장을 8년간 역임했다. 그는 한평생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73년의 한 아침’을 꼽는다.

 그날 신문을 집어들던 그의 시선이 사진 한 구석에 꽂혔다. 덩샤오핑(鄧小平)을 발견한 것이다. 덩은 문혁 발생 후 지방의 한 트랙터 공장 일꾼으로 쫓겨나며 언론에서 자취를 감췄던 인물이다. 그는 “울고 또 울었다”고 한다. 사진에 등장한 덩의 모습을 통해 4인방에 맞서 싸울 덩의 컴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문혁의 광란도 이젠 끝이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중국 외교 또한 사진으로 말한다. 이 분야의 대가는 마오쩌둥(毛澤東)이다. 중·소 관계는 스탈린 사후 나빠지기 시작해 70년엔 소련의 중국 침공을 걱정할 단계에 이르렀다. 마오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계획했다.

 마오는 그해 10월 미국의 언론인 에드거 스노를 베이징으로 불렀다. 국공내전(國共內戰) 승리를 축하하는 퍼레이드에 스노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스노를 사열대의 자기 옆 자리에 세웠다. 사진용이다.

 중국 최고 지도자 옆에 미국인이 서 있는 사진을 내보낸다는 건 중국이 미국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마오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이 스노를 베이징의 선전 도구 정도로 치부해 이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On China)』에 따르면 중국 언론은 마오의 사진을 이용해 정국의 전반적 분위기나 정책 향방을 알리는 데 비상한 재주가 있었다. 얼굴을 찌푸린 마오의 사진은 폭풍 전야의 정국을 상징했다. 외빈을 접견하면서 마오가 손가락을 흔들면 심기가 불편하다는 뜻이었다.

 지난주 세계의 관심은 미·중 지도자의 만남에 쏠렸다. 올가을 중국의 1인자가 될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4박5일 일정으로 미국을 찾았다. 미국은 소득이 많았다. 중국의 미래 권력을 탐색할 기회를 가졌다. 친분도 쌓았다. 그러면서도 인권을 외치는 등 중국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특히 시진핑이 미국의 눈도장을 받으러 왔다는 일각의 해석은 미국의 귀를 즐겁게 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또한 부주석 신분이던 2002년에 미국을 방문하지 않았던가. 차기 중국 지도자의 방미가 정례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책봉받으러 태평양을 건넌다는 뉘앙스가 풍긴다. 과연 그럴까.

 중국이 시진핑 방미를 통해 얻고자 했던 핵심은 무얼까. 답은 2월 15일자 인민일보 1면에 실린 사진 한 장에 담겨 있다. 시진핑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 환담하는 모습이다. 풍채 좋은 시진핑이 날씬한 오바마보다 한결 여유로워 보이는 구도다. 포인트는 여기에 있다. 향후 중국을 이끌 차세대 지도자가 세계 최강 미국의 지도자로부터 ‘강대국 지도자로서 대접받고 있는 모습’을 중국민에게 알리는 것이다. 국내용이다.

 중국 최고 지도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선발되는지는 아직도 짙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미래를 이끌 지도자가 능력이 있는지, 자격이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국제적으로 그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는지 등 이 모든 게 중국인에게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27개 활동으로 촘촘하게 짜인 시진핑 방미는 그런 궁금증에 답하기 위해 정교하게 기획된 작품이다.

 세계 수퍼 파워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중국 내 파벌 간 타협의 결과로 이뤄진 지도자 선출에 정당성을 부여코자 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접이 융숭할수록 효과는 더욱 커진다. 오바마와 어깨를 나란히 한 사진 한 장은 중국이 노리는 특수 효과의 절정이다. 미 대통령이라는 신분의 오바마는 시진핑이 차기 중국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다는 걸 중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국적 장식’인 셈이다. 일종의 들러리 역할을 했다고나 할까.

 마오쩌둥이 즐겨 사용했다는 구절 하나가 생각난다. ‘고위금용(古爲今用) 양위중용(洋爲中用)’이라고. 과거는 현재에 쓰이게 하고 서양은 중국에 기여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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