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 만에 찾아온 한파 녹인 3人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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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은 우울했다. ‘55년 만에 찾아온 한파’ 때문이었다. 한파는 출근 길 지하철을 멈춰세웠을 만큼 매서웠다. 하지만 이보다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서민을 짓누른 물가, 학생을 움츠리게한 학교 폭력, 정치권을 뒤흔든 ‘돈봉투’였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공장에서, 시장에서, 훈련장에서 보란듯 한파를 녹여낸 이들이다. “몸은 추워도 마음만은 따뜻하다”는 3명을 만났다.

김기환 기자, 평창=최종혁 기자

◇“어려운 사람 더 따뜻하게”… 연탄 배달부 윤호택(53)씨

연탄엔 ‘따뜻한’ 이미지가 있다. 한 시인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란 시를 남기기도 했다. 지난 8일 오전 6시 서울 이문동의 한 연탄 공장에서 만난 연탄 배달 기사 윤호택(53ㆍ사진 오른쪽)씨는 “어려운 사람을 더 따뜻하게 데워주는 게 연탄”이라며 “열여섯 살 때부터 해 온 연탄 배달 일을 후회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웃었다.

인천 송현동에 사는 그는 오전 3시쯤 일어난다. 아침을 챙겨먹고 한시간쯤 뒤 장모 한순자(62ㆍ왼쪽)씨와 함께 공장으로 출발한다. 그래야 5시쯤 공장에 도착할 수 있다. 윤씨는 “공장은 6시부터 돌지만 전국 각지에서 배달 기사들이 몰리기 때문에 연탄을 빨리 받아가려면 이 때 도착해야 한다”며 “아무래도 손님들이 아침 일찍 연탄을 받아야 기분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늘어선 트럭 때문에 오전 7시쯤에야 연탄을 실을 수 있었다. 그와 장모는 영하 10도의 칼바람에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30분 만에 2600장의 연탄을 차에 실었다. 차에 올라탄 그는 집에서 싸온 김치전을 건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 번은 산 속 비닐하우스에 사는 할머니가 연탄을 배달시키신 거에요. 차도 못 올라가는 길이라 지게로 연탄을 지고 올라가야 하는데…. 휴~. 힘들지만 연탄 받아들고 기뻐하는 할머니 얼굴을 보니, 배달비도 차마 못 받겠더라고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오전 9시. 이날의 목적지는 인천 산곡동 ‘만인의집’(자폐아동 보호시설)이었다. 그는 “아무래도 아직까지 연탄을 쓰는 사람들은 쪽방촌 주민이나 노인처럼 어려운 분들”이라고 했다. 그가 차에서 내려 연탄을 내려놓자 시설에서 나온 자원봉사자 3명이 돕겠다고 나섰다. 윤씨는 다시 흐르기 시작한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이런 게 사람사는 모습 아니겠습니까.”

◇“따뜻한 커피 한잔 하실래요”… 남대문 시장 상인 마음 데우는 ‘커피 할머니’ 윤옥자(69)씨

수은주가 영하 12도를 가리키던 8일 오후 2시. 서울 회현역 5번 출구 인근 남대문시장 옷가게 골목에선 윤옥자(69ㆍ사진)씨가 커피ㆍ온수ㆍ차ㆍ가래떡을 손수레 가득 담아 팔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냥 ‘커피 할머니’라고 부릅디다. 1978년부터 같은 자리에서 커피를 팔았으니 오래 됐지요. 추운데 커피 한 잔 하고 가실라우?”
그가 이 곳에서 30년 넘게 커피를 판 비결로 꼽은 것은 ‘맛’이다. “원두 커피도 아닌데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겠느냐”고 묻자 “1대 1대 1”이란 답이 돌아왔다. 그는 “커피ㆍ프림ㆍ설탕을 같은 비율로 섞을 때 커피 맛이 가장 좋다”고 했다.

정말 그 때문일까. 단골 손님이 30명 쯤 된다고 했다. 출근길마다 어김없이 한 잔 사들고 가는 옷가게 아가씨, 남편 몫까지 꼬박꼬박 두 잔씩 챙기는 안경가게 아줌마, 가게를 아들에게 물려주고도 시장에 들를 때마다 그를 찾는 할머니….

그는 “가끔 몸이 좋지 않아 쉴 때면 단골들이 전화로 ‘왜 안 나왔느냐. 어디 편찮으시냐’고 묻는다”며 “다음날 못 나올 것 같으면 괜히 걱정하지 않도록 전날 미리 알려준다”고 말했다. 인근 모자가게 상인 신상윤(36)씨는 “이 곳 상인들은 밖에서 물건을 파는 일이 많아 더 추위를 많이 탄다”며 “한 잔에 700원짜리 ‘할머니표’ 길거리 커피가 프랜차이즈 카페 커피보다 훨씬 맛있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이 곳 주변에도 대형 카페가 여러 곳 생겼다. 그 틈바구니에서 윤씨의 커피는 하루 50잔씩 꾸준히 팔린다. 윤씨는 “시장 사람들이 다 싼 물건을 찾는 서민들 아니겠느냐”며 “손님들이 커피를 호호 불어 마시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1대 1대 1에 더한 ‘정(情)’. 커피 맛의 진짜 비결이었다.

◇“추위에도 경계 이상무”… 첫 동계 훈련 중인 해병대 새내기 최시훈(20) 이병

“경계전선 이상무!”

9일 오전 11시 강원도 평창 황병산 해병대 산악종합훈련장에 ‘이등병’의 기합이 울려퍼졌다. 이날 만난 최시훈(20ㆍ사진) 이병은 “지난해 10월 입대해 이번이 처음받는 혹한기 훈련”이라며 “해병 선배들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허리까지 쌓인 눈 속을 쉴 새없이 뛰어다녔다. 어깨에 맨 25kg짜리 군장이 가벼워 보일 정도였다. 연막탄을 던진 뒤 진지로 뛰고, 스키를 탄 채 산을 내려왔다. 그는 “긴장해서 그런지 전혀 춥지 않다”며 “훈련을 마칠 때 진행해 ‘해병의 통과의례’라고 불리는 천리행군도 잘 마치고 싶다”고 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해병대 1기다. 30년 동안 해병대로 살았다. 할아버지는 하반신장애(3급) 때문에 몸이 불편한 아버지 대신 손자가 해병대 전통을 잇기를 바랐다. 최 이병은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께 ‘해병으로 입대해 나라를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해병대 뱃지를 달고 첫 면회를 오신 할아버지가 ‘정말 장하다’며 눈물을 글썽이더라”고 말했다.

그는 집에선 ‘어머니 몰래 설거지를 해 놓는’ 아들이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고교 3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노점을 하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서였다. 동생들에겐 군기 반장이었다. 그는 “아직 휴가를 못 나갔는데 어머니가 해 준 김치찌개도 먹고 싶고 목욕탕에서 동생들 등도 밀어주고 싶다”며 “내가 추운 곳에서 훈련을 받는 것도 다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삼수’ 끝에 해병대원이 됐다는 그. “집합!” 소리에 쏜살같이 뛰어나가면서도 “요즘 젊은이가 나약하다고 하지만 해병대에선 딴 나라 얘기”라고 말할 줄 아는 젊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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