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쓴 칭기즈칸 … “몽골의 심장이 들어있는 소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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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2006년 몽골에서 칭기즈칸 부대의 초원 전투를 재현한 장면. 김형수 작가의 『조드』에는 칭기즈칸이 몽골 평원을 통일시켜 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중앙포토]
칭기즈칸의 초상화

17일 몽골 울란바토르는 최저 기온 영하 29도였다. 한낮에도 영하 14도를 넘지 못했다. 매서운 추위가 도시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추위는 이 도시의 가지런한 일상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나운 추위는 종종 살기(殺氣)를 띠기도 한다. 추위와 가뭄이 겹치면, 수천 마리의 가축이 떼죽음을 당한다. 몽골 유목민에게 가축의 죽음은 굶주림으로 이어진다. 강추위가 몰고 오는 대재앙, ‘조드’다.

몽골인들은 조드를 견디며 생명을 이었고, 역사를 꽃피웠다. 그 역사의 한 가운데 칭기즈칸(1162~1227)이 있다. 난폭한 조드를 다스리고, 유라시아 대평원을 통일시킨 몽골의 영웅. 그는 어떤 삶의 자세로 그런 높다란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까.

 소설가 김형수(53)가 칭기즈칸의 삶을 다룬 장편소설 『조드-가난한 성자들 1·2』(자음과모음)을 냈다. 흔한 전쟁영웅 이야기가 아니다. 칭기즈칸 생애의 근간이 되는 유목민의 삶과 역사에 주목했다. 조드와 맞섰던 중세 유목민들, 칭기즈칸을 중심으로 삶을 개척해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는 소설이다.

 ◆“몽골의 심장이 들어있는 소설”=『조드』는 몽골에서 먼저 화제가 됐다. 이날 오후 몽골작가협회가 『조드』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소설 속 표현을 훔치자면, ‘너르디너른 평원을 건너오며 기운이 한껏 세진 바람이 살갗에 슬쩍 닿기만 해도 필살의 한기가 느껴지는’ 그런 겨울날이었다.

 심포지엄 소식은 전날 몽골 최대 일간지 ‘어더린 쇼당’ 1면에 실렸다. ‘한국의 유명 작가 김형수가 몽골에 왔다’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조드』는 올 7월부터 이 신문에 연재될 예정이다. 한국 작가의 소설이 몽골 신문에 연재되는 건 처음이다. 어용 에르덴 편집국장은 “(칭기즈칸에 대해) 철학적이고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 소설”이라고 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김형수 작가와 어용 국장을 비롯해 독밋(소설가)·뭉흐체첵(시인·몽골작가협회 회장)·수흐바타르(칭기즈칸 대학교 교수)·직지드 수렝(영화감독·시인)·다시냠(몽골전통아카데미 회장·번역가) 등 몽골 문화예술인이 참석했다. 이들은 몽골어로 부분 번역된 『조드』를 읽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17일 울란바로트에서 열린 심포지엄. 왼쪽부터 몽골 시인 뭉흐체첵·김형수 작가·영화 감독 직지드 수렝.

 ▶김형수=『조드』의 중심은 칭기즈칸이다. 군사 전문가로서의 면모보다 사상가적 측면에 관심을 뒀다. 칭기즈칸은 최초의 글로벌인이었다. 가장 유목민다운 인물이었기에 초원을 통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몽골인이 이 소설을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다.

 ▶독밋=몽골인에게 칭기즈칸은 두려우면서도 자랑스런 존재다. 그 때문인지 칭기즈칸에 대한 소설을 쓴 몽골인조차 한 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위대한 인물에 대해 혹시라도 잘못 쓰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그런데 외국인이 칭기즈칸에 대해 소설을 썼다니 놀라운 일이다.

 ▶김형수=조드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재앙이다. 그러나 푸른 하늘(대자연)의 눈으로 보면 생태계를 정화시키는 과정이다. 푸른 하늘이 조드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주는 것이다. 칭기즈칸은 푸른 하늘의 뜻을 실천했던 지도자였다. 조드라는 제목에는 이 모든 게 압축돼 있다.

 ▶직지드 수렝=소설에 몽골 정서가 정확히 담겨 있다. 몽골의 문체와 몽골의 심장이 들어있는 소설이다. 이 작품이 틀림없이 몽골 민족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것이다.

 ▶수흐바타르=마침 올해가 칭기즈칸 탄생 850주년이다. 올해 안으로 몽골어로 완역되기를 기대한다.

 ◆“위대한 노마드, 칭기즈칸”= 작가 김씨는 1998년 맨 처음 몽골을 방문했다. 그는 “몽골에 직접 와서 알게 된 칭기즈칸은 제국주의자가 아니었다. 위대한 유목민이었고, 아시아의 중세를 이끈 지도자였다”고 했다.

 김씨는 이후 10년 이상 몽골 역사와 칭기즈칸의 생애를 추적했다. 2010년 2월부터 10개월간 몽골에서 살면서 『조드』를 썼다. 소설을 촘촘하게 메운 몽골 설화와 민담 등은 그 결과물이다.

 『조드』에는 인간 칭기즈칸에 대한 그의 진한 애정이 묻어난다. 그는 “인간 테무친(칭기즈칸)의 가치관이 ‘몽골제국의 체제정신’과는 다르다는 확신에서 소설을 썼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칭기즈칸은 가장 유목민적으로 살다 간 영혼이다. 칭기즈칸이 초원 통일에 나선 것도, 유목민의 흐르는 삶을 막아서는 정착민을 통합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21세기는 디지털 노마드(nomad)의 시대다. 네트워크와 정보에 의존해 인간의 삶이 흘러 다닌다. 『조드』는 중세의 위대한 노마드 칭기즈칸의 삶을 통해 21세기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조드-가난한 성자들』편은 칭기즈칸이 중앙아시아 고원을 평정할 때까지를 담았다. 칭기즈칸이 대칸에 올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소설(3·4권)과 칭기즈칸 자서전 형식의 소설(5권)도 출간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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