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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출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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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호 18면

일러스트=최종윤

결혼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원(原) 가족에 대한 의무도 없는 동거 커플이 한국에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별에 따른 위자료 걱정이 없으니 결국 헤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짐작하지만 동거 후 결혼한 커플의 이혼율이 높지 않다는 통계도 많다. 스웨덴, 프랑스, 영국의 동거 비율은 50%나 되고 핀란드 아이들의 20%는 동거 커플에게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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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여전히 결혼을 ‘가문의 결합’이라 믿는 사람이 많지만 돈 없고 미래도 불확실한 요즘 젊은이들의 입장은 좀 다른 것 같다. 역사가 시작한 이후 결혼제도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구약에서도 일부다처제나 동거에 대해 엄격한 율법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고, 유대교는 지금도 동거에 관대하다. 중동이나 인도는 느슨한 일부다처제로, 마음에 들지 않거나 늙은 부인을 내쫓기도 한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이모나 삼촌을 어머니, 아버지라 부르며 씨족끼리 강한 연대의식을 지니고 함께 살기도 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가족, 소유, 그리고 국가의 기원'이란 책에서 원시 시대는 사유재산 없는 모계사회였지만 잉여재산과 상속 때문에 가부장제 사회가 됐다고 주장했다. 근대의 결혼제도가 자본주의와 물신숭배에 오염돼 매춘, 간통, 가족이기주의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개봉 중인 ‘두 개의 선’이란 독립영화에는 결혼제도의 허구와 싸우자는 데 의기투합해 동거를 결정한 가난한 커플이 등장한다.

경제수준과 사회적 지위를 재는 부모의 의도대로 중매시장에 나와 분에 넘치는 혼수를 장만해 남부럽지 않은 결혼식을 한다고 사랑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동거하면서 아이도 가질 수 있다는 젊은이들이 발칙하다며, 아이를 위해서라도 결혼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직은 대다수다. 그러나 사랑이나 결혼 등의 사생활을 속 모르는 남들이 쉽게 판단하고 재단할 수는 없다.

전통적인 결혼을 반대하는 동거 커플뿐 아니라 미혼모들은 더 상황이 열악해 어쩔 수 없이 정말 키우고 싶은 아이를 포기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많다. 중세도 아닌데, 미혼모에 대한 백안시가 아이들을 엄마 없는 고아로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혼자지만 훌륭하게 아이를 키우는 홀아버지·홀어머니도 있고, 무늬만 부부로 유지하면서 아이를 학대하는 경우도 있다. 편부·편모를 결손가정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편견이다.

젊은이들은 변하고 있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의 비율은 점점 증가할 것이다. 출산율 저하를 막겠다며 푼돈을 쥐여줄 게 아니라 비혼(非婚) 출산을 사회가 같이 보듬어주는 게 현실적인 답이 아닐까 싶다. 낙태나 입양을 선택하지 않고 당당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분위기라면 출산율도 오를 것이다. 내 핏줄과 가문에 집착하는 사회보다는 공동체가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사회가 유토피아에 가깝지 않을까.

아들이 십대였을 때 엄마인 필자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결혼 않고 아이를 만들어오면 엄만 어떻게 할 거야?”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었다. “대환영! 엄마는 빨리 할머니가 되고 싶거든.” 진심이었다.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모든 사랑은 비록 성숙하지 않더라도 존중받아야 하며, 어떤 탄생이건 축복받아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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