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춤대신 스모 한판 어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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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랏차차 스모부〉는 유쾌하기 그지없는 영화다.

일본의 전통 스포츠인 스모를 소재로 한 이 이색적인 영화는 스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든, 일본인 혹은 일본문화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상관없이 누구나 맘껏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덕목 가운데 하나가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오락성이라고 한다면, 그 면에서는 만점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가벼운 코미디 영화' 정도로 평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따진다면 세상에 꼭 봐야할 영화라는 게 도대체 몇 편이나 되겠는가.

완연한 가을이다.어어, 하는 사이에 찬바람은 소매 속으로 스윽 스며들어오고, 뉴스 시간엔 유쾌한 소식을 별로 들을 수 없다.

왠지 쓸쓸하고 우울해지는 것 같다."어이, 괜히 심란한데 영화라도 한 편 보는 게 어때" 라는 기분으로 극장을 찾을 이들에겐 '으랏차차 스모부' 를 서슴없이 추천한다.

연인이든 아이이든 누구와 함께 보더라도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을 수 있는 영화가 그리 흔치는 않지 않은가.

감독 수오 마사유키는 한국에서도 개봉돼 상당한 관객을 모았던 영화 〈섈 위 댄스〉로 1996년 일본 아카데미상 전 부문을 휩쓸고 미국에도 진출한, 일본 영화계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감독 중 하나다.

92년 만든 〈으랏차차 스모부〉는 그의 두번째 극장용 장편 영화로, 그해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으면서 그에게 '흥행성과 예술성을 함께 갖춘 감독' 이라는 명예를 안겨준 작품이다.

영화를 깔깔거리며 보고 나면, 영화를 만들 땐 어깨의 힘을 빼는 게 참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뿐 아니라 방송 프로그램도, '애니메이션도, '그리고 신문 기사도 마찬가지지만, '뭔가 심오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라든가, '훌륭하다는 평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는 의식 때문에 힘이 가득 들어가고 결과는 오히려 좋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그런 쓸데없는 힘을 빼고 영화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기술이야말로 체득하기 어려운 기술이 아닌가 싶다.

수오 마사유키 감독은 바로 그런 '힘빼기 기술' 이 몸에 밴 감독으로 보이는데, 모토키 마사히로.다케나카 나오토.에모토 아키라 등 〈섈 위 댄스〉 와 〈으랏차차 스모부〉 에 모두 출연한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가 감독의 그런 재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일본 위성방송에서 간혹 기이할 정도로 뚱뚱한 선수들이 다리를 한쪽씩 들어올리는 이상한 모습을 본 게 스모에 대한 지식의 전부라 하더라도 영화 감상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낯선 소재를 스토리 속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것은 잘 만든 영화들의 공통된 덕목 가운데 하나다.14일 개봉.

*노트
'웬 스모?' 라는 반응, 즉 스모가 낯설기는 일본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으로, 주인공이 학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학 스모부에 들어간다는 게 기본 설정.

〈서편제〉 가 판소리라는 역시 고답적인 소재를 한(恨) 이라는 주제에 풀어 넣어 성공했다면, 〈으랏차차 스모부〉 는 '갖가지 해프닝 끝에 스모에 대한 애정 발견' 이라는 가벼운 이야기 구조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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