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부패의 덫에 걸린 베트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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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심상복
경제연구소장

신흥시장 가운데 한때 특별한 관심을 모았던 베트남이 영 신통찮다. 자연 화제의 중심에서도 점점 밀려나고 있다. 최근 뉴스로는 지난달 다보스 포럼에서 대기오염 최악 10위국에 포함됐다는 안 좋은 소식이 고작이다. 얼마 전 이 나라 최대 도시 호찌민시를 찾았을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도로 위 오토바이 물결이었다. 이국적이긴 하지만 이것도 따지고 보면 도로시설이 열악한 탓이다.

 베트남을 말할 때 흔히 미국과 싸워 이긴 유일한 나라라고 한다. 월남(越南)을 지원하러 참전했던 미국이 1975년 두 손 들고 철수한 걸 두고 하는 말이다. 그 뒤 이 나라는 미국을 물리쳤다는 영웅 호찌민의 유지를 받들어 사회주의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근면하고 머리회전도 빠르다는 소리를 듣는다. 교육열도 한국 못지않고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구도 강하다. 땅은 한반도의 1.5배에 자원은 다양하고 풍부하다. 인구는 거의 9000만 명으로 시장 규모도 좋다. 20~40대가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인구구조도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아직 1인당 소득은 1204달러(2010년)로 북한과 비슷하다. 국가신용등급은 망해가는 그리스 수준이다.

 높은 인플레 탓에 이 나라 화폐인 동(dong)화 가치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1달러에 2만 동을 넘는다. 한 해 무역적자는 120억 달러에 이른다. 자원은 많고 인건비는 싼데 왜 좋은 물건을 만들어 수출하지 못할까.

 전기·도로·항만·철도 등 인프라 부족이 첫째 걸림돌이다. 들어오는 외국기업도 노동집약적이다. 싼 인건비만 보고 오니 기술 축적이 될 만한 미래형 산업은 찾기 힘들다. 그나마 삼성전자가 이 나라 경제에 상당한 보탬을 주고 있다. 세계 최대 휴대전화 공장을 수도 하노이 인근 박린성에 지어 2009년부터 가동하고 있다.

 베트남의 성장과 빈곤 탈출에 가장 큰 장애물은 정부라고들 한다. 사회주의 국가답게 이 나라 경제는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만연한 부패로 생산성은 형편없다. 1년여 전 베트남 최대 국영기업 ‘비나신’이 부도를 냈다. 조선회사인데 국내총생산(GDP)의 5%에 육박하는 45억 달러의 빚을 지고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은행 돈을 끌어다 흥청망청 써댄 것으로 드러났다. 회계장부는 완전히 엉터리였다. 외국 금융기관들은 베트남의 다른 공기업도 사정은 비슷할 거라고 말한다.

 비효율은 은행권도 예외가 아니다. 자금 수요는 많고 기업장부는 분식투성이니 부정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무원들의 부패상은 외국 기업을 대할 때도 별로 다르지 않다고 한다.

 국가를 움직이는 집단 지도체제는 서로의 부정을 눈감아 주는 시스템으로 변질됐다는 비아냥을 듣는다. 결국 공공부문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얘기다. 인민의 행복을 최고로 친다는 사회주의 체제가 그들의 행복을 빼앗고 있는 셈이다.

 1986년 베트남 공산당 제6차 대회가 ‘도이모이’라는 경제 개혁·개방 조치를 채택했을 때 세계는 이 나라를 주목했다. 경제의 문을 열고, 각종 규제는 풀어 생산성을 높인다는 마스터플랜이었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르는 동안 외곽의 공단지역은 크게 확장되고 도시엔 번듯한 빌딩이 많이 들어섰지만 시민들의 생활수준은 별로 향상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베트남 국민들이 스스로 발전을 포기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사회 곳곳이 썩어도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지도층이 다 해먹어도 그건 그들의 영역이고, 서민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한다는 것이다. 저항을 모르는 국민이 결과적으로 부패의 공범 역할을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호찌민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