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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길은 당신이 첫발 떼는 곳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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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4일(현지시간) 백악관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에게 악수를 청하며 손을 내밀고 있다. 두 사람 간 만남은 정상회담이 아님에도 이례적으로 85분 동안 이뤄졌다. 두 사람 사이에 미국 흑인 인권운동을 주도한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청동 조각상이 놓여 있다. [워싱턴 로이터=뉴시스]

워싱턴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은 정중하지만 절제된 외교 화법을 구사했다. 14일 오전(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처음 만난 그는 “존경하는(honorable) 오바마 대통령”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그러곤 “먼저 후진타오 국가주석,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원자바오 총리의 안부 인사를 전한다”고 했다.

 행사장에 풀 기자로 들어온 중국 기자는 올가을 당 총서기로 최고지도자가 되는 시 부주석이지만 현재 국가 서열은 6위인 자신을 낮춘, 준비된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오찬장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향해선 “장관의 개인적 노력이 없었다면 상하이 엑스포 때 미국관이 없을 뻔했다”고 해 클린턴 장관으로부터 “바로 제가 미국관의 산파”라는 농담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단호한 발언을 할 때는 인용과 비유, 통계를 동원했다.

 조 바이든 부통령이 불공정 무역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경쟁은 미국인의 DNA”라며 “게임이 공정할 때만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고 하자 “덩샤오핑 전 주석이 말하길, 돌을 만지면서 강을 건너라(摸着石頭過河)라고 했다. 서로 존중하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되받았다. 또 “중국의 가요에 ‘길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이 첫 발자국을 떼는 곳에 있지요’라는 노랫말이 있다”고도 했다. 오후 미·중 재계 인사들과의 모임에선 “중·미 간 교역이 더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 내 생각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다”며 “영국의 사상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때가 성숙했는지 성숙하지 않았는지를 재봐야 한다’고 말했다”고 해 중국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특히 미국을 선진국으로, 중국을 개발도상국으로 규정해 상호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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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부주석은 또 중국과 미국의 합작 자동차회사인 SAIC-GM을 거론하며 “매년 중국에서 120만 대를 생산하는데 2년 연속 중국 내 GM의 판매량이 미국 내 판매량을 초과하고 있다”고 말했 다.

 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해 바이든 부통령이 거듭 지적하자 “지난 30여 년간 중국은 인권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뤄냈다”며 “그러나 아직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선선히 답했다. 그러면서도 “많은 인구, 지역의 다양성, 불균형 발전 등 중국 고유의 상황으로 인해 삶의 질을 개선하고 인권에서 진전을 이루기 위해선 아직 많은 도전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작가 에드워드 벨라미는 ‘황금시대는 우리 뒤에가 아니라 우리 앞에 있다’고 했다”며 미·중 관계의 과거보다 미래를 보자고 역설했다. 이런 시 부주석에 대해 AP통신과 워싱턴 포스트 등은 “후진타오 주석의 딱딱하고 형식적인 스타일과 달리 인간관계를 배려하는 유연한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날 선 질문에 유연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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