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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동네 전북 장수 ‘시네마 천국’ 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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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전북 장수군 장수읍 ‘한누리시네마’를 찾은 지역 주민들이 입체안경을 쓰고 3D 영화를 감상하고 있다. 이 영화관에는 이웃 마을 주민까지 몰려 지난해 2만3000여 명이 찾았다. [장수=프리랜서 오종찬]

“요렇게 실감나는 영화는 칠십 평생 첨이여. 쪼맨 애가 황금 망치로 거인을 쓰러뜨리는 걸 본개 덩달아 신바람이 나는구먼. 영화에 나온 구름다리는 진짜 같아서 나도 걸어보고 싶드랑깨.”

 15일 전북 장수군 장수읍의 ‘한누리시네마’ 로비. 3D(3차원) 영화 ‘토르’를 보고 나온 김경숙(71)씨는 “촌에서 서울 영화관과 똑같은 영화를 본깨 정말 좋다”고 말했다.

 ‘한누리시네마’는 두메산골 장수군이 개설한 국내 유일의 농촌 영화관이다. 규모(1관 54석, 2관 36석)는 작지만 필름을 사용하지 않는 최신 디지털 영화관이다.

 이 영화관이 농촌 주민들에게 ‘문화행복지수’를 높이는 벤치마킹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1년간 영화관을 찾은 관람객은 2만3120명으로 전체 주민(2만3000여 명)과 맞먹는다. 멀리 강원도·경상도 공무원들도 이 산골 영화관을 배우겠다며 끊임없이 찾아온다.

 한누리시네마는 2010년 11월 문을 열었다. 남아돌던 문화회관 1층을 리모델링하는 데 6억원을 투자했다. 지자체는 전기·수도요금을 부담하고, 운영은 글로벌미디어테크(영상벤처기업)에 맡겼다. 김선태 미디어테크 대표는 "아직은 월 100여 만원씩 적자가 나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비용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관 초기에는 “농사짓기도 바쁜데 누가 영화 보러 가겠느냐” “손바닥만 한 시골에 무슨 영화관이냐”며 반대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관은 선풍을 일으켰다. 지역 주민은 물론 무주·진안과 남원시에서도 관람객이 몰린다. 전주·대전 등 도시에서도 관광을 겸해 찾아오는 발길이 늘고 있다. 관람료는 성인 5000원(3D는 8000원)으로 도시보다 3000~5000원 싸다. 영화는 오전 10시~오후 11시 10여 편을 상영한다. 평일에 50~70여 명, 주말에는 200~300명이 찾아온다. 지난달엔 관람객이 3500여 명에 달했다.

 무엇보다 큰 성과는 영화관 덕분에 지역 분위기가 확 바뀐 것이다. 주민들이 농촌에서도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고태봉(53)씨는 “새 영화 한 편 보려면 왕복 2시간 걸리는 전주까지 나가야만 했다”며 “최신작을 맘껏 볼 수 있어 이제야 제대로 문화생활을 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계·친목회 등 놀이문화 행태도 차원이 달라졌다. 으레 술집·노래방으로 향하던 뒤풀이 장소가 영화관으로 바뀌었다. 마을회관의 할머니·할아버지들도 한 달에 2~3회씩 단체관람을 나오곤 한다. 장수군은 주민 편의를 위해 마을 순회버스도 운영하고, 영화관 옆에 수영장·헬스장을 건립했다. 저소득층에 연간 5만원씩 지원하는 ‘문화바우처(이용권)’를 제대로 사용할 곳이 생겼다. 그동안은 쓸 곳이 마땅치 않아 청소년들이 휴대전화·컴퓨터 노래를 내려받는 데 주로 사용했다.

 장재영 장수군수는 “농민들에게는 딴 나라 얘기 같던 영화를 즐길 수 있어 군민의 자존감이 높아졌다“며 “앞으로 농민들이 직접 영화를 만들어 상영하는 농민 영화제를 추진하고, 연극·오페라 등 다양한 문화프로그램도 상영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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