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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게’ 써도 되나 … 세상 놀래킨 소설가 김사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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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형식미는 ‘김사과 스타일’의 중요한 축이다. 하지만 그는 다시 전진할 태세다. “다음 작품에선 사실적인 이야기를 써 볼 생각”이라고 했다. [사진작가 수진]

김사과(28)는 사건이다. 소설가는 사건을 짓는 사람이지만, 그는 스스로 사건이 된 소설가다. 문단에선 그를 이렇게 부르곤 한다. “1980년대생 작가군에서 가장 개성적이고 문제적인 작가.” 김사과의 경우라면, 이 문제적이란 말을 두 갈래로 풀 수 있겠다. ①한국문학의 관습에 ‘문제를 일으키는(problem)’ 작가 ②우리 사회에 불편한 문제(question)를 던지는 작가.

 ①이야 자주 얘기되던 바다. 2005년 등단 이후 김사과 소설은 온갖 서늘한 말의 대명사였다. 살인·자살·광기·적의…. ②는 김사과 소설의 문학적 가치를 따지기에 적합한 진술이다. 김사과가 소설에서 제기했던 문제는 한국인이 불편해할 만한 것이었다. 10대의 자살과 살인을 다룬 『미나』, 몰락한 청춘을 그린 『풀이 눕는다』를 떠올려보시라. 올해로 등단 8년차. 김사과의 질문은 불편했으나, 늘 적절했다.

 김사과의 신작 장편 『테러의 시』(민음사)가 나왔다. ①과 ②를 모두 충족시키는 수작이다. 시와 극을 끌어안으며 관습적 소설 작법에 문제를 일으킨다. 매춘과 불법체류자, 그리고 세속화된 종교에 대해 불편한 질문도 던진다. 13일 오후 그와 마주 앉았다.

 -제목부터 강렬하다.

 “ ‘테러’가 발음은 참 예쁜지 않은가. 말의 속뜻과 뉘앙스가 충돌하는 게 재미있어서 붙인 제목이다. 심각하게 지은 건 아니다.”

 과연, 문제적 작가다. 테러가 예쁜 말이라니! 인터뷰는 계속 이런 식이었다. 솔직하고 독특해서, 묻는 이가 멈칫할 때가 많았다. 이런 문답도 있다.

 -만족스러운 작품인가.

 “별로…. 전반부와 후반부만 마음에 든다. 중간 부분은 이야기 흐름을 따라 너무 편하게 가버린 측면이 있다. 작가로선 과도기적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답은 야속하다. 독자 입장에선 비교적 술술 읽히는 소설의 중간 부분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설명도 납득은 간다. 장엄한 서사시마냥 밀도 높게 구성된 전반부, 시간·서사·이미지를 한 데 뭉개버린 후반부는 우리 문단에서 보기 드문 파격적 형식이다. 김사과는 “혁신적 내용에는 혁신적 형식이 필수”라고 했다.

 그의 소설은 이번에도 어림없다. 읽는 이를 불편하게 하는 내용으로 그득하다. 섹스 클럽에서 일하는 조선족 제니와 영국인 불법체류자 리의 이야기다. 아버지에게 “돼지처럼” 성폭행을 당하고 한국으로 팔려온 제니와 마약 딜러 아버지 밑에서 “개처럼” 자란 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동거를 시작한다. 한국 사회의 밑바닥에 자리잡은 이방인들은 매춘과 타락한 교회 등에 휘둘리는데, 끝내 약물 중독에 시달리다 파국으로 치닫는다. 

 -소설 속 캐릭터는 어떻게 구상했나. 

 “이번 작품은 2010년 여름 독일 베를린에서 썼다. 스스로 이방인이 된 어정쩡한 처지에서 소설을 구상했다. 자연스레 한국 사회의 이방인이 떠올랐다. 조선족과 불법체류 외국인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이중적 시선을 이야기로 풀어내야겠다 싶었다.” 

 이번 소설에서 김사과의 언어는 더 드세졌다. 제니의 성폭행 장면이나 섹스 파티를 묘사하는 대목은 여성인 작가 스스로도 “여성 독자라면 불편할 수도 있는 장면”이라고 했다. 

 -극단적인 묘사가 왜 필요했나. 

 “사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더 극단적인 것 아닌가. 온갖 끔찍한 사건이 매일 일어나는데…. 소설에 묘사된 것은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이다.” 

 거듭, 김사과라는 사건은 불편하다. 파격적인 소설 형식도, 소설이 고발하는 노골적인 현실도 읽는 이를 불편하게 한다. 그런데도 못 놓겠다. 자꾸, 못 놓겠다. 김사과를 읽는 일은 지금 한국 문단의 어떤 첨단을 더듬는 일이다. 그 첨단에는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문제가 널브러져 있다. 우리는 김사과라는 사건을 견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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