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스타열전 (36) - 앤디 페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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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메이저리그에는 사이드암이나 언더핸드 투수들이 희귀하다.

이들이 희귀해진 건 메이저리그에 좌타자들이 늘어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스위치타자들을 포함해 급속도로 늘어난 좌타자들은 이들 변칙투수들의 설 자리를 잃게 만들었다.

좌타자들의 증가가 사이드암이나 언더핸드 투수의 설자리를 빼앗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좌투수들은 구단의 스카우트대상 1호가 되며 귀하신 몸이 되었다. 현재 메이저리그 최고의 좌완투수는 랜디 존슨과 데이비드 웰스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나이를 감안할 때 올시즌과 같은 활약이 언제까지 계속 될 수 있을지는 의문점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차세대 최고의 좌완투수는 누구일까? 차세대 최고의 좌완투수 선두대열에 뉴욕 양키스의 앤디 페팃이 있다.

올시즌 메이저리그 6년차인 그는 1972년 6월15일 LA 베이턴 로그에서 태어났다. 그가 양키스와 연을 맺은 건 지난 90년 6월 열린 프리에이전트 드래프트였다. 당시 양키스는 앤디 페팃을 22번째 라운드에서 지명했지만 앤디 페팃은 그해 양키스와 계약을 맺지 않고 텍사스에 있는 산 재신토 대학에 진학했다.

그가 양키스와 계약을 맺은 건 91년 5월25일이었다. 그는 1991년 양키스 팜의 루키리그 소속 템파와 싱글 에이 오니온타에서 프로선수로서의 첫해를 보냈다.

그해 그는 12경기 선발 등판, 6승3패, 방어율 1.55의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템파에서 그는 6경기 선발 등판, 4승 1패, 방어율 0.98을 기록했고 오니온타에서의 6 경기 선발 등판에서는 2승 2패, 방어율 2.18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마이너리그 2년째였던 1992년 그는 루키리그에서 한단계 상승, 싱글에이 그린스보로에서 선수생활을 펼쳤다. 그는 그린스보로에서 27경기 선발 등판해 10승 4패, 방어율 2.20을 기록했다.

그의 방어율 2.20은 양키스 팜소속 선수들중 최고의 기록이었고 그가 속해있던 사우스 아틀랜틱 리그 2위에 해당되는 뛰어난 성적이었다. 또한 그는 45개의 어시스트로 리그 선두, 7할 1푼 4리의 승률로 양키스 팜 선수들중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상대 타선에 단지 2할 3푼 2리의 피안타율을 기록하며 작년의 호투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입증해 보였다.

1993년 캐롤라이나 리그 소속 싱글 에이 프린스 윌리암으로 팀을 옮긴 페팃은 26경기 선발 등판해 12승 9패, 삼진 135개,방어율 3.06을 기록, 양키스 팜선수들중 출전경기수 1위, 다승 4위를 차지했다.

1994년 시즌 시작을 이스턴리그 더블에이 알바니에서 했었던 페팃은 알바니에서의 11번의 선발등판에서 7승2패 방어율 2.71을 기록했다. 5월 한달동안 그는 6번의 선발등판에서 4승1패, 방어율3.66을 기록, 양키스 팜소속 5월의 선수와 이스턴리그 이주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그해 6월10일 트리플 에이 콜럼부스로 팀을 옮긴 그는 오타와의 트리플에이 데뷔전에서 패배를 겪기도 했지만 콜럼부스에서의 16경기 선발 등판에서 7승 2패, 방어율 2.98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그해 그는 알바니와 콜럼부스에서 27경기 선발 등판해 14승 4패, 방어율 2.86을 기록하며 양키스 팜소속 올해의 투수상을 받았다.

양키스 팜 선수들중 다승 부문에서 컴버랜드와 함께 1위를 차지했고 방어율에서 2위, 169.2이닝으로 투구이닝수 3위,삼진111개로 9위에 해당되는 기록이었다. 이제 그는 양키스팜 선수들중 가장 각광받는 선수가 되었고 11월 18일자로 메이저리그 40명 로스터에 올랐다.

1994년 트리플 에이 콜럼부스에서의 좋은 성적은 95년 그를 메이저리거로 만들었다.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그의 처음 보직은 불펜투수였다.

메이저리그 데뷰전이었던 4월29일 캔자스시티전에서 그는 0.2이닝동안 3안타, 2실점(2자책), 삼진 1개, 와일드피칭 1개를 허용하는 부진을 보였고 이후 4번의 등판에서도 부진은 계속되 5월16일자로 다시 트리플 에이로 강등되었다.

절치부심 5월27일 다시 메이저리그로 올라온 그는 오클랜드전에서 메이저리그 데뷰후 처음으로 선발 등판 경기를 가졌다.

이경기에서 그는 5.1이닝 동안 7안타, 3실점(1자책), 볼넷 2개, 삼진 3개, 홈런 1개로 비교적 호투를 펼쳤지만 타선의 불발로 첫 선발등판전에서 패전을 기록했다.

첫 선발경기에서 인상적인 투구를 펼쳤던 그는 그후 남은 시즌 기간 동안 양키스 선발투수진에 잔류하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와의 두번째 메이저 리그 선발 등판전에서 완투패를 당했던 페팃은 6월 7일 마침내 메이저리그 첫승의 기쁨을 맛보았다.

페팃은 6월7일 오클랜드와의 경기에서 7이닝동안 4안타, 1실점(1자책), 볼넷1개, 삼진 3개를 기록하며 팀의 6-1 승리를 이끌었다. 7월 12일 캔사스 시티와의 경기에서는 스콧 닐슨 이후 양키스 소속 신인투수로서는 처음으로 완봉승에 도전했던 그는 9회 1실점, 아쉽게 기록작성에 실패했다.

8월까지 그의 성적은 7승 8패였지만 양키스가 아메리칸 리그 와일드 카드 경쟁을 벌였던 9월 그는 여섯번의 선발등판에서 5승 1패, 방어율 3.38을 기록하며 빅리그 데뷰후 최고의 투구를 펼쳤다.9월 그가 패한 유일한 경기는 8월 3일 대 디트로이트전뿐이었다.

양키스 팀 사상 페팃외에 9월 한달동안 5승을 기록한 신인 투수는 1910년 7승 무패를 기록한 러스 포드, 1940년 어니 본햄의 6승 1패, 1964년 멜 스토틀마이어 5승 2패, 1992년 밥 위크맨 5승 1패가 있었다.

그해 그는 31경기에 출전 그 중 26경기에 선발 등판해 12승 9패, 방어율 4.17을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상 투표에서 미네소타의 마티 코르도바, 캘리포니아의 개릿 앤더슨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그가 기록한 12승은 그해 아메리칸 리그 소속 신인투수중 최다승이었다. 그리고 그는 12개의 견제사를 잡아내며 아메리칸 리그1위를 차지, 상대팀 주자들의 경계대상 1호가 되었다.

그해 벌어진 시애틀과의 디비전시리즈 2차전에 선발등판한 그는 7이닝동안 9안타, 4실점(4자책), 볼넷3개, 삼진 0개, 홈런 1개를 허용했지만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다. 그의 9월 맹활약으로 와일드카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양키스는 시애틀의 벽을 넘지못하며 디비젼시리즈에서 패퇴했다.

빅리그 2년차였던 1996년 그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주며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중의 한명이 되었다. 그는 23살 9개월의 나이로 홈 개막전에 선발 등판, 1910년 4월 14일 힐탑 파크에서 보스턴전에 선발 등판한 제임스 히포 본 이후 양키스 투수중 가장 어린나이에 홈 경기에 등판한 투수가 되었다.

그는 그해 34경기에 선발 등판,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의 잣대인 20승 이상을 기록했고( 21승 8패) 방어율은 3.87을 기록했다.

다승 부문에서 리그 1위, 승률 리그3위, 방어율 리그 8위를 기록했었던 그는 그해말 벌어진 아메리칸 리그 사이영상 투표에서 토론토의 팻 헨트겐이어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

양키스는 그가 선발로 나온 34경기에서 24승 10패를 거두었다. 95년 리그 견제사 1위를 기록했었던 페팃은 96년 11개의 견제사를 잡아내며 메이저리그 선두를 차지했다.

피안타율은 2할 7푼 1리였던 그는 좌타자에 3할 2푼 9리, 우타자에 2할 5푼 9리를 기록하며 좌투수이면서도 오히려 좌타자에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그의 유일한 구원등판은 5월1일 벌어진 볼티모어전이었다. 전날 볼티모어전에 선발 출장했던 그는 1이닝동안 8안타 9실점의 시즌 최악의 투구내용을 보이며 강판당했었다.

그는 15회 연장전까지 펼쳐진 다음날 경기에서 3이닝동안 무실점의 완벽한 투구를 펼쳤다. 이날 등판으로 95년 5월13일이후 계속된 선발등판 연속경기기록이 32경기에서 멈추게 되었다.

그는 그해 벌어진 포스트시즌에서 2승1패, 방어율 4.78을 기록하며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도왔다. 특히 그는 애틀란타와의 월드 시리즈 5차전에서 8.1이닝동안 상대타선을 무안타로 틀어막아 승리 투수가 되,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월드시리즈 1차전에 선발 등판, 2.1이닝동안 7실점을 허용하며 포스트시즌 등판에서 첫 패배의 아픔을 겪었던 그는, 2승2패로 승부의 분수령이 된 5차전 존 스몰츠와의 맞대결에서 눈부신 투구로 팀의 1-0 승리를 이끌어내며 1차전 패배를 깨끗이 설욕했다.

96년 최고의 한해를 맞았었던 페팃은 다음해인 97년 내용적으로 더욱 성숙한 투수가 되었다. 35경기에 선발등판했던 그는 18승7패 방어율 2.88의 성적을 올렸다.

7월5일 토론토전에서 빅리그 데뷰후 처음으로 완봉승을 거두기도 했었던 그는 개인통산 한시즌 최고의 방어율과 한시즌 최다 투구이닝수(240.1이닝), 한시즌 최다 삼진수(166개)를 기록하며 자신의 주가를 올렸다.

방어율, 승률, 다승부문에서 리그 4위를 차지했고 투구이닝수에 리그3위, 완투경기 4번으로 리그 공동 6위, 삼진 리그8위를 기록했다. 35번의 선발등판과 14개의 견제사, 36번의 내야 땅볼 병살타유도, 9이닝당 0.26개의 피홈런수는 리그 최고의 기록이었다.

또한 그가 기록한 1996년과 1997년에 걸쳐 거둔 39승은 모든 아메리칸 리그 투수 중 최고의 성적이었으며 메이저리그를 통틀어 아틀란타의 존 스몰츠와 동률을 이루는 것이었다.

96년과 마찬가지로 97년에도 좌투수이면서도 여전히 좌타자 약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7월16일 실점을 허용할때까지 23이닝동안 무실점투구를 펼치는등 그의 기량은 절정에 올라있었다.

이렇게 잘 나가던 그였지만 언제나 기쁨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9월5일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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