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주주권 강화 목청 커질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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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3일 경기도 이천 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한 주주가 최태원 SK 회장이 검찰수사를 받고 있어 부적절하다며 하이닉스 사내이사 선임에 대해 반대의견을 밝히고 있다. 최 회장은 찬성 41.92%, 반대 15.89%로 하이닉스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연합뉴스]

국민연금이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하이닉스 이사 선임을 반대하지 않자 국민연금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이하 의결권전문위) 위원 2명이 사퇴해 파문이 일고 있다. 13일 하이닉스 임시주총에서 찬성 41.92%, 반대 15.89%로 최 회장이 사내이사로 선임되자 의결권전문위 지홍민(이화여대 교수) 임시위원장과 김우찬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연구원 교수가 사퇴했다. 국민연금이 중립을 유지했다는 이유에서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앞서 10일 의결권전문위원회를 열어 최 회장 이사 선임 건에 ‘중립유지’를 결정했다. 위원 8명이 표결한 결과 찬성 3명, 반대 3명, 기권 1명, 중립 1명이었다. 최 회장 선임에 찬성한 측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자”고 했고, 반대 측은 “오너 리스크가 크지 않으냐”며 맞섰다.

 지 교수는 13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위원회가 설립될 때의 당초 목표를 실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립이라는 결정이 부당하다고 생각해 사퇴했다. 한국거래소가 한화 주식 거래정지를 하지 않은 것처럼 재벌 편의 봐주기”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행보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덩치 때문이다. 적립금 350조원의 18%(62조원)를 591개 국내 상장사에 투자하고 있다. 174개사는 지분이 5%가 넘는다. 하이닉스를 비롯, 신한금융지주·KB 등 7개사는 최대 주주다. 상장사 시가총액의 5.5%를 차지한다.

 그동안 주주가치 훼손을 막기 위해 국민연금 주주권 강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를 남용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는 반론도 있었다. 하지만 기업 오너들의 범법행위가 증가하면서 지난해 4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대기업 견제 수단으로 주주권 행사 강화를 주창했고 최근에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에서 ‘경제민주화’의 한 수단으로 국민연금 주주권 강화를 외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이번 사퇴 파동에 깔려 있다.

 국민연금공단 전광우 이사장은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주주권을 행사해야지 기업을 손보는 쪽으로 가면 곤란하다”며 “범법행위를 한 경우 확정판결을 받으면 이사 선임에 반대한다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이런 이유로 지난해 3월 SK·SK이노베이션의 최태원 회장 이사 선임과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 이사 선임을 반대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주주권을 강화하려면 어떤 기준으로, 어디까지 할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이 사내이사로 선임된 건 반도체 사업 속성상 대규모 투자나 인재채용 등 하이닉스가 글로벌 기업으로 나가는 데 (최 회장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재벌 봐주기’ 의혹을 비롯한 다양한 의견을 모두 참고해 경영에 반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이닉스는 14일 이사회를 열어 최 회장의 구체적인 역할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연금공단이 판단하기 곤란한 사안을 결정하고 의결권 행사 지침을 정기적으로 검토해서 보완한다. 2006년 3월 만들었다. 정부·재계·노동계가 각각 2명을 추천하고 국민연금 지역가입자 대표 2명, 연구기관 1명이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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