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장맛의 비밀, 강남에도 있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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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전통장 기능보유자 조숙자씨가 서울 세곡동 자택 마당에서 장이 담긴 항아리에 숯과 대추를 넣고 있다. 조씨는 일반인에게 고추장·된장 및 전통음식 만드는 법을 무료로 교육하고 있다. [구윤성 대학생 사진기자(후원:Canon)]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세곡동 은곡마을의 한 현대식 단독주택. 새끼줄로 엮어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메주가 눈에 들어왔다. 마당 한쪽에는 눈 덮인 100여 개의 장독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항아리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자 옅은 검은색 물에 띄운 메주가 눈에 들어왔다. 간장이다.

 “여기에 넣는 숯은 살균작용을 하고 대추는 단맛을, 참깨는 고소한 맛을 내지. 빨간 고추를 넣는 이유는 악귀를 쫓기 위해서야.”

 서울시가 공인한 ‘전통 장(醬) 담그기 전수자’인 조숙자(71) 할머니가 간장맛을 내기 위한 재료들을 하나씩 넣으며 해준 설명들이다.

 할머니 집은 서울에서 전통 장 제조를 배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전통음식 장류 교육장’이다. 된장·간장·청국장·막장 만드는 법 등 전통 장의 모든 걸 가르쳐 준다.

 장류교육장이 들어선 건 1994년 봄. 당시 유해물질이 함유된 된장이 사회문제가 됐다.

그래서 직접 장을 담가 먹고 싶다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마땅히 배울 데가 없었다. 서울시 산하 서울농업기술원이 ‘장이 맛있다’고 소문난 이들을 수소문해 조 할머니를 찾아냈다.

장맛도 좋지만 시어머니 때부터 2대에 걸쳐 50년간 변함없는 맛을 지켜온 때문이다. 할머니 집은 따로 교육시설을 준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장 담그기 관련 시설이 다 갖춰져 있었다.

 ‘재료비만 내면 장을 제대로 가르쳐 준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에서 요리연구가와 주부, 학생 등 연간 5000명이 찾아왔다. 일본 등 외국까지 소문이 났다. 재료비는 1만~2만원 정도다.

 수업 내용은 오로지 ‘장’으로 시작해 ‘장’으로 끝난다. 좋은 콩 고르는 법, 메주 쑤는 법 같은 기초부터 제대로 알려 준다. 제자 모숙영(56·여)씨는 “아무 때나 전화해도 친정엄마처럼 친절하게 알려준다”고 말했다.

 장을 맛있게 담그는 비법은 무엇일까. 조 할머니는 “콩·물·공기·항아리·정성 등 모든 재료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답했다.

또 아무리 좋은 재료를 써도 항아리 상태가 좋지 않거나 정성이 부족하면 장맛이 변한다. 장을 담글 때 쓰는 소금도 2~3년 정도 묵혀 간수가 빠진 게 좋다.

장을 담그기 좋은 시기는 음력 정월부터 3월 초 사이다. 기온이 낮을 때 담가야 장맛이 변하지 않고 오래 가고 파리 같은 해충도 꼬이지 않는다.

 조 할머니의 며느리 선미순(43)씨는 “장비나 분위기는 현대식으로 조금씩 바뀔지 몰라도 장맛은 변함없이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장을 배우고 싶으면 서울시농업기술센터(02-459-8994)에 신청하면 된다.

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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