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아 아프지마’] 다시 태어나도 지금 배우자와 결혼하겠습니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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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이혼 급증, 왜?

 “다시 태어나셔도 지금 배우자와 결혼하시겠어요?” 얼마 전 60세 이상 여성 180여 명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 이런 질문을 드린 적이 있다. 단 한 어르신만 번쩍 손을 들었다. 서글펐지만 그나마 한 분이라도 계셔서 다행이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분은 무슨 질문을 해도 계속 손을 들었다. 나중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치매기가 있으셨다. ‘이런 맨정신으로는 우리 남자를 다시 선택할 여인은 없단 말인가’ 하는 서글픈 느낌에, 인생은 정말 비극이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최근 60세 이상의 황혼이혼이 급증해 신혼의 이혼을 앞지르고 있다. 옆 나라 일본에서는 황혼이혼이 우리보다 앞서 급증했는데 5건 중 4건은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내치는 경우라 한다. 우리나라도 할아버지 예정자들의 미래가 밝지 않다.

 사람의 심리를 연구하는 의사로서 많은 여성과 상담하며 분명히 확인한 것 중 하나는 ‘모성애 엔진’의 양면이다. 모성은 우리가 사는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원인 동시에 여성의 삶을 어렵고 후회스럽게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 엔진은 여성이 배우자를 찾기 시작할 때 작동을 개시하는데, 섹시하고 멋진 내 이상형을 뒤로하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환경을 줄 수 있는 남자를 선택하게 한다. 특히나 나이를 더 먹으면 결혼 적령기를 놓칠지 모른다는 초조함에 모성 엔진은 더 몰아붙인다. ‘누구와 하든 결혼하면 다 비슷하다, 성실한 남자 만나 아이 낳고 맞추고 살면 된다’라며. 결혼 후 행복은 누구와 하느냐가 90%를 좌우한다. ‘결혼하면 다 비슷하다’는 것은 거짓 상식이다.

자녀 이야기에만 열 올리는 주부들

 “나도 내 인생을 조금 살아봐야 하지 않겠어요?” 황혼이혼을 준비하고 있는 60대 초반의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아내로서 남편 뒷바라지하고 엄마로서 자녀들을 보살피다 보니 내 자신이 없어진 느낌이에요”라며. 음식점이든, 커피 전문점이든 자녀를 둔 여성이 여러 명 모인 곳에 가보면 거의 100%, 시작부터 끝까지 자녀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는 없다. 모성 엔진이 아이와 엄마의 자아를 완전히 하나로 압축시킨 모양새다. 그런데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이 고성능 엔진이 멈춘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이룬 것은 무엇이며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하는 본질적 철학적 고민이 ‘개성’이라는 엔진에서 생산되기 시작한다.

 모성 엔진은 모든 엄마를 하나로 만드는 강력한 응집력이 있으나 몰개성적이다. 사람이 갖고 있는 큰 욕망 중 하나가 다름(distinction)에 대한 갈망이다. 나만의 것, 개성적인 정체성을 갖고 싶은 열망이다. 인생의 슬픈 비극은 모성 엔진에 눌려 있던 개성화 엔진이 황혼에 이르러 다시 스위치 ‘온’ 된다는 것이다. 외로움과 내가 없어져 버린 인생에 대한 후회가 모성의 빈자리에 스며든다. 어찌 보면 최근의 출산율 저하는 자기 희생적 ‘모성’에 대항하는 ‘개성’의 강력한 저항은 아닐까.

 모성과 개성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는 식의 접근은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모성과 개성 모두 생물학적 하드웨어와 심리 소프트웨어에 깊이 박혀 있는 핵심 엔진이기 때문이다. 둘 다 포기할 수 없다. 인생의 비극을 최소화하려면 절묘한 조화와 균형의 전략이 요구된다.

모성·개성 엔진의 균형 찾아야

 우선 결혼을 준비하는 당사자와 부모 모두 ‘결혼 적령기의 부담에서 벗어나야 한다’. 너무 모성에 사로잡히게 되면 시간에 쫓기며 내 개성을 만족시키는 배우자를 얻지 못하기 쉽다. 나와 잘 맞는 배우자가 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연애 경험도 어느 정도 쌓여야 하고 이성에 대한 직간접적 공부도 해야 한다. 사랑의 감정은 생물학적으로 자동 생성된다. 하지만 나와 잘 맞는 좋은 배우자를 볼 수 있는 눈, 나와 너무나 다른 이성에 대한 이해와 교감 능력은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감성 지식이고 기술이다.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노력하듯 사랑 비즈니스에도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결혼 후 다가올 미래를 대비한다’는 모성 엔진을 잠시 누르고 개성 엔진이 힘을 발휘하도록 사회통념에 저항하는 뚝심도 필요하다.

 얼마 전 지인이 인기 개그 프로의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하는 남자)’처럼 아줌마와 아가씨의 감별 기준을 들려줬다. 수다 자체가 목적이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아줌마는 대화의 내용 자체보다는 오늘 수다를 실컷 떠들면 그것 자체에 만족하고 뿌듯해 한다는 것이다. 모성애적 동질감이 만족감의 근원이라는 이야기인데 씁쓸한 면이 있다. 인생의 성공 여부는 균형 감각에 달려 있다. 우리 내면, 그리고 사회 안에 존재하는 양극의 가치와 에너지를 잘 조화시켜야 한다. 니체는『비극의 탄생』에서 이성, 그리고 쾌락과 감성의 적절한 조합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했는데, 인생도 마찬가지다. 개성과 모성을 경쟁 구도가 아닌 아닌 상호 보완적인 시너지 모델로 삼을 때 인생의 비극은 줄어들 것이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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