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논쟁

정치판 재벌개혁론 제대로 가고 있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논쟁 여야 모두 재벌개혁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중소기업 업종과 영세상권을 침범하는 등 폐해가 극심하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암탉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재벌개혁의 필요성과 문제점을 점검해 본다.


기업과 경제 살리는 개혁이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 특위 위원장

재벌기업들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그런데도 지금 대다수 국민은 재벌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재벌 독식 때문이다. 현 정부는 재벌에 참 잘 해줬다. 친기업 정책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친재벌 정책이었다. 출자총액제한, 금산분리 등 규제를 완화해줬고, 법인세 인하, 저금리, 고환율로 돈벼락을 안겨줬다. 그 결과 재벌 대기업의 이익은 수직 상승했다. 2009년에는 약 35%, 2010년에는 무려 60% 이상 폭증했다. 30대 재벌의 자산총액은 10년 새 3배가 늘었고, 계열사는 두 배가량 증가했다.

 정부는 소위 ‘낙수효과’를 기대했다. 대기업의 이익이 늘어나면 투자와 고용이 늘어나고, 또 납품 기업들에도 혜택이 돌아가서 성장의 과실이 아래로 흘러내려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낙수효과는커녕 재벌 독식만 심화되었다. 재벌 대기업들은 막대한 이익을 남기면서도 고용확대를 주저하고 오히려 사내하청을 통한 비정규직 남용을 주도했으며, 하도급 기업에 대해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기술 빼앗기 등 불공정 거래를 일삼았다. 중소기업 영역과 심지어 골목상권까지도 마구 침투하는 무한 영토확장을 추구하고,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로 중소기업이 설 자리를 빼앗는 일도 다반사였다.

 재벌 독식의 결과는 양극화다. 상대적 빈곤율은 1997년 8.7%에서 2010년 14.9% 급증했고, 5분위 배율은 3.97에서 6.02까지 증가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임금격차는 날로 커지고, 저임금 노동의 비중이 OECD 최고다. 가계소득보다 가계부채가 빠르게 증가해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이 되었다. 젊은이들은 괜찮은 일자리 찾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 세대로 전락하고 있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 최대의 위험요인이다.

 재벌개혁 논의가 자칫 경제의 발목을 잡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는 기우다. 재벌개혁은 기업 옥죄기가 아니라 오히려 기업 살리기다. 총수의 전횡과 사익추구 및 경영권 세습 등 전근대적 재벌 지배구조에서 기업들을 해방시켜 핵심역량을 중심으로 국제경쟁력을 기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 키우자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건강한 기업 생태계를 조성함으로써 고용 창출력을 증대하고 분배를 개선하며 경제의 안정적인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올해 다보스 포럼의 주제는 ‘대전환’이었다. 세계 자본주의의 수뇌부가 모여서 더 이상 시장만능, 승자독식, 1:99의 경제는 안 된다면서 대안을 모색했다. 규제를 풀고 시장에 맡기면 효율과 성장으로 풍요를 누리게 될 줄 알았는데, 실상은 탐욕과 무절제로 위기를 낳고 말았다는 뼈아픈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대전환의 핵심은 바로 재벌 독식을 바로잡는 일이다. 선거용 재벌 때리기가 아닌 기업과 경제를 살리는 진짜 재벌개혁이 필요하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 특위 위원장

논리적 정당성 없고 부작용 우려된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가 도를 넘고 있다. 대기업에는 더 많은 세금과 규제를, 중소기업에는 더 많은 보호와 지원을 하겠다는 공약 경쟁에 여당·야당이 따로 없다. 선거 때만 되면 대기업 때리기는 통과의례처럼 단골 메뉴였다. 하지만 이번은 여야가 똑같이 ‘경제민주화’를 표방하며 경제력 집중 규제에 더하여 재벌세까지 운운하니 사태가 심각하고 산업계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대기업 때리기는 유리한 선거 전략이라고 믿기 때문일 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비율이 대략 13%대 87%이니 후자를 편드는 게 유리해 보인다. 게다가 국민들의 경제적 불만은 높은데, 일부 대기업은 수출을 통해 괄목할 만한 실적을 내고 있으니 정치적 희생양으로 몰고 싶은 유혹도 있을 게다.

 그러나 정치는 단기적 인기보다 국민의 행복 증진과 국가발전에 봉사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 정치권 행태는 문제가 있다. 첫째, 여야 모두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지만 이를 통해 어떤 세상을 구현하겠다는 것인지 내용이 없다. 경제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겠다는 것인지 지향점을 분명히 밝혀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헌법 제119조제1항)’는 대원칙이 우선하는 조항인데도 경제민주화를 위한 규제만 앞세우는 것도 문제다.

 둘째, 출총제를 부활시키고 순환출자를 막겠다는 공약은 경제력 집중이 심화된다고 믿기 때문이나 이는 통계적 진실과 다르다. ‘대기업들은 기득권을 확장하기 위해 경제와 정치, 사회의 영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결과 경제력 집중은 계속 증가한다’는 게 경제력 집중 규제 논리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 가설은 통계적 검증을 통해 학문의 영역에서는 이미 폐기된 지 오래다. 개별 시장에서의 독과점 폐해를 우려해야지 경제력 집중을 문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계열사 수가 늘었다며 문어발식 팽창을 막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기업집단의 매출총액에서 주력 업종의 매출액이 차지하는 비율, 즉 업종 특화율은 계속 높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10대 그룹의 3대 업종 특화율은 2007년 73%에서 2010년 80%로 증가했다. 빵이니 커피니 하는 주변부적인 에피소드를 가지고 대기업 문제의 전부인 양하며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다.

 여야의 공약대로 대기업에 대한 징벌적 규제를 강화하면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산업생태계가 더 취약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인구 1만 명당 대기업(종업원 500인 기준)의 수는 우리가 0.07개로 일본의 2분의1, 독일의 3분의1에 불과하다. 경제를 튼튼하게 하려면 중소·중견기업들이 대기업으로 계속 성장하는 유인 체계를 조성해서 대기업의 수를 늘려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권은, 대기업은 끌어내리고 중소기업 밀도는 높이는 방향으로 역주행하고 있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