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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한 느티나무

중앙일보

입력

느티나무는 수명이 오래 되다 보니, 명이 짧은 인간들에게는 범접하기 어려운 신령의 대상이 됐던 모양입니다. 옛 조상들에게 자연은 늘 신성한 것이었잖아요. 그 가운데에서도 느티나무처럼 천년을 넘게 살아가는 수명이 긴 생명체들은 신비의 대상이었지요. 신성한 나무 느티나무는 그래서 사람들의 기원을 들어주는 대상이었어요.

우리 나라의 느티나무 가운데에는 그래서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빌면 그 소원을 들어주는 것도 있고, 몹쓸 병을 낫게 해 주는 느티나무도 있답니다. 또 신령의 대상인 느티나무를 꺾으면 화를 당하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충남 홍성의 느티나무는 바로 그런 나무예요. 이 느티나무의 가지가 잘려나가면 사흘 뒤에 그 고을의 목사(牧使)가 죽는다는 거지요.

느티나무도 다른 나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선조들에게 풍년이나 흉년을 점치게 하는 나무였어요. 봄에 일제히 싹을 틔우면 풍년, 띄엄띄엄 나면 흉년. 위쪽에서 먼저 싹이 트면 풍년, 아래쪽에서 먼저 나면 흉년. 이런 식이었지요. 하여간 신비의 대상이면서도 우리 고향 마을을 굳건히 지켜온 느티나무에는 많은 이야기가 얽혀서 전해오는데, 이들 이야기는 모두들 우리 삶의 중요한 교훈들을 담고 있답니다.

▶광주 서석동 효자 느티나무

그 가운데 전라도 광주 서석동 효자 느티나무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이 마을에 만석이라는 효자 청년이 살고 있었어요. 착하고 부지런한 만석은 마을 어른들로부터도 늘 칭찬을 받으며 잘 살았지요. 그런데 어느 날 만석의 홀어머니가 병에 드셨어요. 곧 나으시려니 했지만, 어머니의 병세는 점점 깊어졌어요.

효성 지극한 만석은 어머니를 구해낼 약을 구하기 위해 사방으로 약을 구하러 다니며 애썼어요. 하지만 어떤 약도 어머니의 병세를 완화시키지 못했지요. 끝으로 만석은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산삼을 찾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산삼은 오래된 심마니들도 찾기 어렵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었지만, 오로지 어머니에 대한 효성 하나로 만석은 온 산을 헤집고 다녔지요. 그렇게 백일을 돌아다녔지만, 산삼을 구할 수는 없었답니다.

낙심한 우리의 효자 청년 만석은 산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어요.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어머니를 살려내지 못할 텐데 어쩌나 하는 걱정은 만석을 짓눌렀고,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어머니를 살려내야 하는데"라는 생각은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몸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 거죠.

그렇게 축 쳐진 몸으로 산을 내려오는 중이었어요. 만석이 걸어내려온 바로 뒤에서 누군가가 점잖은 노인의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처음에는 환청이려니 했다가 돌아봤지만, 보이는 것은 우거진 나무 숲 뿐이었어요. 만석은 "어머니를 살려내지도 못하는 모자란 녀석이 되고 나니, 온 세상 천지가 나를 희롱하는 구나"하는 생각에 더욱 괴롭기만 했어요.

그런데 다시 또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아주 오래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을 근사하게 생긴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어요. 그 느티나무에서는 신비롭게도 신령스러운 빛이 감돌기까지 했답니다. 바로 그 나무가 다시 신령스러운 목소리로 자신을 불렀어요.

만석은 알아 챘지요. 바로 저 느티나무가 자신을 부른 것이라는 것을요. 게다가 그 느티나무가 워낙 신령스러운 빛과 음성을 가졌기에 꾸벅 인사 올린 뒤, 자신의 사정을 다 털어놓으며 병석에서 신음하고 계신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간청했답니다.

신령스런 그 느티나무는 그러나 참 야속했어요. 아니, 어쩌면 만석의 효성을 시험해보려는 속셈이었던지도 모르지요. 느티나무는 만석에게 네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두 눈을 뽑아주면 네 어머니를 살릴 방도를 일러주겠다고 했단 말입니다. 엽기적인 부탁 아니겠어요?

엽기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우리들이지, 만석에게는 결코 엽기적이지 않았어요. 어머니만 살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만석이었거든요. 만석은 그 자리에서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두 눈을 뽑아냈고,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상태에서 느티나무에게 자신의 두 눈을 가지라고 했어요.

어머니를 살리려는 만석의 효성에 느티나무 뿐 아니라 숲 속의 온갖 나무와 짐승과 벌레들에게까지도 감동의 물결을 울렸답니다. 이로써 만석이 거짓 없는 지극한 효자였음을 확인한 느티나무는 곧바로 자신의 이파리를 떼어서 만석에게 안겨주며, 이 이파리를 갖고 가서 잘 달여 어머니께 드리면 병이 씻은 듯 나으실 것이다라고 했지요. 그리고 이어서, 만석의 두 눈을 원래보다 더 튼튼하게 고쳐주었답니다.

날 듯이 기뻐하며 만석은 집에 돌아와 느티나무 잎을 정성껏 달여 어머니께 드리고 어머니는 씻은 듯이 나아 오래오래 평안하게 사셨답니다. 바로 그 신령스럽고, 조금은 엽기적인 나무가 바로 오늘날의 광주 서석동 효자 느티나무인 것입니다.

〈느티나무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호부터는 애국가에도 나오는 소나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소나무 역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나무로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답니다.〉

고규홍(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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