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벤처요람 '대덕 밸리' 신고합니다

중앙일보

입력

대덕연구단지가 28일 대덕밸리로 이름이 바뀐다.

연구 중심 과학단지에서 연구성과를 산업화하는 과학.산업단지로 변신한다.

28일 대전시 엑스포 과학공원에서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대덕밸리 선포식이 열린다.

원격 조종되는 로봇을 활용한 제막식에서 대덕단지는 과학기술의 메카에서 벤처기업의 요람으로의 변모를 약속한다.

대덕밸리는 흔히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비견된다. 과학영재의 둥지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있고 전자통신연구원.생명공학연구원.원자력연구원 등 17개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삼성.LG화학.한화 등 민간기업 연구소가 몰려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연구원들만 1만7천여명이고 이 중 4천1백명이 박사학위 소지자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전체 박사의 10%에 해당한다.

대덕밸리가 형성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다. 일부 연구원들이 자신들이 연구하던 과제를 들고 나와 창업했다.

대덕벤처 1세대로 연구원 출신 벤처기업의 모임인 '대덕 21세기' 를 이끌어온 원다레이저의 원종욱 사장은 "96년 30여명의 연구원 출신 벤처기업가가 모여 모임을 만들었다" 며 "당시 사업을 한다니 주위에서 말렸으며 외부자금 유치는 꿈도 꾸기 어려웠다" 고 말했다.

이곳 벤처기업의 장점은 전문분야 학위에 오랜 현장 경험이 있는 박사 경영인이 기업을 이끈다는 점이다.

주간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의 조사에 따르면 대덕단지 벤처기업가는 평균적으로 카이스트 박사 출신에 10년 이상 연구 경력을 지닌 40대 정보통신(IT)업종 전문가다.

창업하기 전에 박사과정까지 10여년 공부한 뒤 연구소에 취업해 다시 10여년 연구원으로 일했다.

이는 첨단기술의 특성상 반짝 아이디어만으로는 창업이 곤란하고 많은 지식과 경험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대덕밸리에서 활동하는 벤처기업은 97년 1백20개에서 98년 2백50개, 99년 3백개로 급신장했으며 연말에는 5백여개에 이를 전망이다.

내년에 7백개사, 2005년에는 2천5백개사로 늘어날 것으로 대전시는 내다봤다. 또 99년 3천억원이었던 매출액도 올해 1조6천억원, 2005년에는 17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대덕밸리 기업들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시장보다 해외시장에 비중을 더 두고 있다. 카이스트 신기술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도남시스템의 경우 제품의 90%를 수출한다.

종업원 22명에 매출 50억원으로 규모는 작지만 세계적인 통신업체인 루슨트 테크놀로지.AT&T.알카텔.노키아 등에 납품하고 있다.

대덕밸리에서 처음으로 코스닥시장에 등록한 블루코드 테크놀로지도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임채환 사장은 한해의 3분의1 정도를 해외에서 보낸다. 원자력연구소장 출신으로 칠순을 바라보는 한필순 가이아 대표는 음식물 쓰레기 발효기를 국내보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영국.일본 등에 먼저 판매했다.

대덕밸리의 기술력을 보고 외지 업체 및 벤처캐피털의 대전 이전도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텔레포스.제노바이오텍 등 7개사가 대전에 자리잡았다. 무한기술투자를 비롯, 산은 캐피탈.신보창업투자 등 4개 벤처캐피털이 대전에 지점을 열었고, DL파트너스 등 다른 업체들도 지점 개설을 서두르고 있다.

대덕밸리내 기업이 성장하고 늘어나면서 생산공간 부족이 현안으로 떠올랐다.

첨단 히트 파이프를 생산하는 에이팩의 송규섭 사장은 "연구단지내 건폐율을 20%로 제한하고 있는데 이를 30% 정도로 완화해 공간 부족을 해결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대덕밸리를 포함한 중부권 벤처기업의 모임인 '21세기 벤처 패밀리' 의 이경수 회장은 "대덕밸리 선포식은 이 지역이 아시아의 벤처 메카로 우뚝 서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는 것" 이라며 "기술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금융.회계.법률.경영컨설팅 등의 벤처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 고 말했다.

대전〓이석봉 기자, 구남평.유상연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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