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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바둑은 스포츠다, 토토 거부할 이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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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네 수 늘어진 패’를 져 지난해의 가장 불가사의한 역전으로 꼽히는 김기용(왼쪽) 대 이원영의 한국바둑리그 대결. 바둑의 이런 의외성이 부작용을 낳을 것이란 우려도 있지만 단체전이라 승부조작이 힘들다는 점에서 한국리그가 바둑토토의 첫 대상이 되고 있다.

바둑에 스포츠토토를 도입하는 문제를 놓고 논쟁이 다시 불붙을 조짐이다. 바둑토토는 지난해 한국기원 이사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하고 프로기사회에서도 70%의 지지를 받으며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으나, 바둑계의 신망을 지닌 국수 조한승 9단과 여류 최고봉 조혜연 9단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편지를 쓰는 등 공개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제동이 걸렸다. 한국기원은 28일 국회에서의 공청회를 시작으로 재 추진 수순을 밟고 있다.

 바둑토토에 대한 반대는 ▶ 바둑을 사행성 오락게임으로 전락시킬 수 있고 ▶바둑은 1대1 경기라 승부 조작이 쉬우며 ▶나이 어린 프로기사들까지 승부 조작에 대한 외부 압력에 시달릴 수 있다로 요약될 수 있다. 축구 등이 이미 승부 조작 사건에 휘말리는 것을 걱정하며 고기 반찬을 먹으려다 자칫 판이 뒤집힐 수 있으므로 욕심 버리고 그냥 살자는 게 요지다. 조한승 9단은 국수 상금을 몽땅 기부한 따뜻한 청년이고, 독실한 신앙심으로 잘 알려진 조혜연 9단은 많은 책을 펴냈고 영어에도 능통한 재원이다. 이들의 바둑을 걱정하는 마음은 순도 100% 다. 또 토토와는 무관하지만 최근 배구 선수들이 불법 도박 사이트와 관련된 승부 조작으로 구속되는 사태도 바둑토토 반대 분위기에 힘을 싣고 있다. 하지만 이 논쟁에서 필자는 바둑토토에 대한 찬성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도박에 대한 논의는 영원한 평행선이다. 라스베이거스는 어떤 이에겐 소돔과 고모라이고 어떤 이에겐 사막에 핀 신화다. 도박에 대한 근원적 질문은 접어두자.

 오늘날 영국 프리미어리그든 미국 PGA든 다들 스포츠 베팅을 한다. 리오넬 메시나 타이거 우즈 같은 세계적인 스타들 그 누구도 자신을 ‘도박판의 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바둑은 특별하고 다른 스포츠와 달라 비교대상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바둑 스스로 이미 스포츠를 선택한 사실을 거부하고 시곗바늘을 뒤로 돌리자는 얘기와 비슷하다. 축구에서 승부 조작 사태가 일파만파 번졌지만 축구인 그 누구도 “토토를 중지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부정행위로 인해 축구가 무너지지도 않는다. 그 둘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바둑은 실수나 착각에 의한 역전이 많아 프로기사에게 비난이 쏟아질 수 있다고 하지만 축구에도 자살골이 있고 페널티킥 문제도 있다. 어이 없는 실수는 모든 스포츠에 존재한다.

 바둑은 오랜 세월 제도권 밖에서 독야청청 외롭게 살아왔다. 조남철 9단은 자신이 ‘노름 대장’이라 불렸던 시절을 얘기 하곤 했다. 1960, 70년대 직장마다 점심시간이면 바둑을 두는 이 천지였던 시절에도 바둑은 ‘시간 도둑’이란 지탄을 받 았다.

바둑은 뛰어난 기사들의 국위 선양과 더불어 대학에 바둑학과가 생기고 바둑 TV와 인터넷 사이트가 생겨나며 비로소 동반자를 얻었다. 그러나 바둑은 오히려 팬이 계속 줄어들었다. 바둑을 뒷받침하는 ‘산업’이 거의 없다는 것이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전통적인 바둑 후원자들은 점점 늙어가고 젊은이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바둑의 위기는 이미 시작됐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바둑이 외형적 성장을 보이는 것은 앞서 언급한 ‘동반자들’ 덕분이다. 바둑이 스포츠로 들어가면서 정부도 새로운 동반자가 됐다. 바둑은 난생처음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보급 사업을 하고 있다. 바둑은 이제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본다.

 스포츠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된 스포츠토토는 이런 분위기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바둑이 토토에 들어간다면 바둑은 산업을 얻게 되고 제도권의 새로운 동반자를 얻게 된다. 더구나 그 수익은 대부분 바둑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 보급 활동에 쓰이도록 되어 있다. 오랜 세월 예도는 바둑이 추구하는 훌륭한 가치였다. 하지만 그를 내세워 바둑이 스포츠임을 애써 외면하는 것은 개인의 철학일 수는 있어도 바둑의 정책이 될 수는 없다. 토토로 예상되는 부작용을 세심하게 점검하고 대책을 세우자. 부작용이 두려워 모든 스포츠 종목이 원하는 토토를 거부하지 말자. 세상의 혼탁함이 싫다고 산속으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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