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시작한 정권 때 총리·장관·당 의장 지낸 그들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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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8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선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발효절차중단 촉구대회 및 미국 오바마 대통령·상하원 의장 서한 발송 기자회견’이란 긴 이름의 행사가 열렸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의 계단 위에 나란히 올라섰다. 그 양옆과 뒤편으로 민주통합당 의원 21명과 ‘국회 본회의장 최루탄 투척 사건’의 주인공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 총선 예비후보들 50여 명이 모였다. 집회에 앞서 민주통합당은 전 의원들에게 원내대표 명의로 “보좌진까지 모두 동원하라”는 소집령을 내렸다.

 집회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2월 한·미 FTA 협상추진이 공식 발표돼 2007년 4월 타결될 때까지 정부·여당의 핵심 요직에 있던 얼굴들이 다수 참가했다. 한명숙 대표는 당시 국무총리(2006년 4월~2007년 3월), 정세균 상임고문은 산업자원부 장관(2006년 2월~2007년 1월), 정동영 상임고문은 열린우리당 의장(2006년 2~5월), 천정배 의원은 법무부 장관(2005년 6월~2006년 7월)을 각각 지냈다. 이들이 이번엔 민주통합당 지도부와 의원 신분으로 총선 출마자들과 함께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한·미 FTA 폐기 구호를 외쳤다.

 강경파만이 아니다. 지난해 말 한나라당(현 새누리당)과의 한·미 FTA 합의 처리 협상에 나섰던 온건 협상파의 대표 격인 김성곤 의원도 있었다. 김 의원은 중앙에 위치한 자리에서 ‘한·미 FTA발효 저지’라는 종이를 들고 “발효 절차 중단하라”는 선창에 맞춰 주먹을 쥔 채 “중단하라”를 외쳤다. 김 의원은 “일단 당의 입장이 정해졌기 때문에 따르기로 했다”고만 했다. 집회에 참석한 또 다른 중진의원은 참석 이유에 대해 “다 알지 않느냐. 공천을 앞두고 있는데…”라고 말을 흐렸다.

 민주통합당 지도부와 공심위원들은 최근 ‘정체성’을 공천심사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겠다고 공언해왔다. 당 공약인 한·미 FTA 폐기에 얼마나 동조하느냐도 중요한 심사기준이라는 얘기다. 집회에서 한명숙 대표는 “오늘 전달되는 이 서한이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의 상하원 의원들에게 전달돼서 그들의 심금을 울려 발효가 중단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정희 대표는 “통상교섭본부장이 3월 1일 발효를 이야기하지만 ‘3·1 만세운동’까지도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대회를 마친 후 미국 대사관으로 오바마 대통령과 상하원 의장에게 보낼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 려다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 이 “불법 요소가 있다”며 길을 막자 사회단체에서 나온 사람들이 욕설을 하며 “밀어버려”를 외치기도 했다. 정동영 고문이 “횡단보도만 건너면 헤어지겠다”고 경찰을 설득해 이들은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었다.

 민주통합당 이종걸·정범구 의원과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은 각각 ‘오바마 대통령 귀하’ ‘조 바이든 상원의장 귀하’ ‘존 베이너 하원의장 귀하’라는 한글과 영문명이 쓰인 노란 봉투를 하나씩 들고 대사관으로 향했다. 구호를 외치면서 예비후보들은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엉뚱한 곳을 쳐다보며 ‘인증 샷’을 찍기도 했다. 선거용 홍보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24.5조 2항=한·미 FTA 협정문 24.5조는 FTA의 발효와 종료 절차를 다루고 있다. 그중 2항은 “이 협정은 어느 한쪽 당사국이 다른 쪽 당사국에 협정의 종료를 희망함을 서면으로 통보한 날부터 180일 후에 종료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쪽은 이 조항을 근거로 “차기 대통령이 미국에 ‘그만두자’고 팩스 한 장 보내면 된다”는 주장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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