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도 자산’ 인식, 창업 재도전하면 투자자 더 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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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미국 벤처캐피털회사 ‘월든 인터내셔널’의 립부 탄 회장. 그는 카카오톡으로 가족과 대화한다고 말했다.

미국 벤처산업의 심장부인 실리콘밸리에서 벤처캐피털회사 ‘월든 인터내셔널’을 운영하는 립부 탄(52) 회장은 “글로벌 벤처업계에 한국 벤처기업들이 도전장을 내볼 만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만든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즐겨 쓴다는 그는 “한국 젊은이들이 과거와 달리 언어 장벽을 거의 못 느끼고,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발달로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제품을 전 세계로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월든 인터내셔널은 미국·한국·중국·인도 등에서 자금을 모아 벤처기업에 투자한다. 미국 사학연금이나 정부 연기금부터 삼성·KT 등 한국 대기업까지 다양한 경로로 조달한 20억 달러(2조2000억원) 규모의 투자펀드를 운영한다. 주로 소프트웨어·인터넷·하이테크·바이오·환경 산업 등에 투자한다.

 -실리콘밸리가 창업의 성지가 된 요인은.

 “첫째는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문화다. 여기서는 창업해 실패하면 낙오자로 찍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다시 창업에 도전하면 투자자들이 줄을 선다. ‘정직한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었다면 새 사업의 성공 가능성은 더욱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둘째는 스탠퍼드대·UC버클리 같은 좋은 학교와 인적 구성이다. 학생이나 교수가 휴직하고 창업하는 걸 학교가 격려하고 지원한다. 셋째는 수많은 성공 사례를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를 인정하는 문화는 어떻게 만드나.

 “새로운 사업에는 실패할 확률이 꼭 있다. 횡령·배임 등 부정·부패가 아닌 ‘정직한’ 실수라면 창업자는 교훈을 얻는다. 실패 요인을 창업자와 투자자가 함께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는다면 실패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 기업가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건데, 한 번의 실패로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탄 회장은 한국 사정에도 밝다. 월든 인터내셔널은 한국 벤처기업 6곳에 투자했고, 그중 5개에서 수익을 거뒀다. 탄 회장은 한국 창업 여건이 비교적 양호하다고 진단했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부족하지만 서울대·KAIST 같은 좋은 학교와 인적 자원이 있고, 넥슨·티켓몬스터 같은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벤처 투자가 왜 활성화해야 하는가.

 “벤처기업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건 전에 없던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HP나 애플·구글·아마존을 보라. 벤처기업으로 출발해 컴퓨터, 모바일 기기, 검색 엔진, 온라인 서점이라는 각각의 산업을 일궜다.”

 -월든 인터내셔널의 투자성적표는.

 “투자금액의 20%는 홈런, 20%는 볼, 나머지는 그 중간쯤이다. 벤처캐피털업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항공기 조종사 한 명을 키우는데 약 400억원이 든다고 한다. 훌륭한 벤처투자자 한 명을 키워내는데도 비슷한 투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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