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인공혈액' 곧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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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곳곳엔 피에 목 말라 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 드라큐라가 많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외과 수술.전쟁.사고 등으로 해마다 4천5백만ℓ(헌혈용 팩 1억개 해당) 의 피가 세계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혈액공급이 넉넉한 곳일지라도 "에이즈나 간염 등 몹쓸 병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수혈 공포증'' 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다.

실제 수혈로 인해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이 우리나라에만 38명(지난 6월말 현재) 이나 되고, C형 간염 등 다른 질병에 걸리는 경우는 집계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러나 빠르면 1~2년 뒤에는 수혈부족과 수혈로 인한 질병 감염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인공혈액이 미국 등 선진국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마지막 시험인 임상 3단계에 들어가는 등 상용화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긴급 뉴스로 흘러 나오는 특이 혈액형 헌혈자 찾기도 추억 속으로 사라질 날이 멀지 않은 것이다.

현재 인공혈액을 개발하고 있는 연구소.업체는 국내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선바이오, 미국 노드필드.바이오퓨어.얼라이언스.애펙스.박스터, 일본의 텔레모 등이다.

국내에 출원된 인공혈액 관련 특허는 40건에 이른다.

3단계 임상 시험에 들어간 업체는 알리앙스와 노스필드 등으로 이와 관련한 기술개발을 미국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다.

현재 시판 중인 인공혈액으로는 바이오퓨어가 개발한 개(犬) 용으로 1998년 미국 식품의약청(FDA) 의 승인을 받은 것이 유일하다. 한 팩(4백㏄) 당 1백50달러 내외.

인공혈액은 혈액형 구분없이 사용할 수 있고 에이즈 등 바이러스의 감염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

원료도 사람들이 쓰는 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많아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이점도 있다.

원료로는 주로 소의 피나 헌혈 받아놨다가 기한이 지난 혈액을 사용하고 있으며, 일부 회사에서는 화학적으로 합성한 신물질을 이용하기도 한다.

보관 기간도 상온에서 2년 정도로 4주인 현재의 혈액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허청 약품화학과 윤경애 심사관은 "동물이나 사람의 피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만 골라내 인공혈액을 만든다" 며 "수혈 뿐 아니라 약품 쪽에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어 시장이 무궁무진하다" 고 말했다.

인공혈액은 대동맥.실핏줄 등을 포함한 혈관을 통해 살 속 곳곳에 산소를 공급하는 기능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공혈액의 핵심 물질인 헤모글로빈은 핏속 적혈구 안에 들어 있는 일종의 미세한 단백질. 이것은 산소가 많은 허파에서는 산소를 빨아들이고, 산소가 부족한 일반 살 속에 가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신 산소를 내 뿜는다. 그래서 헤모글로빈만 추출해 원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에이즈에 걸린 사람의 피를 이용하는 것도 안전하다.

이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헤모글로빈보다 수 백배 더 크기 때문. 밥 그릇(헤모글로빈) 에 코끼리(에이즈 바이러스) 가 들어갈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KAIST 생물과학과 변시명(60) 교수는 "당장은 동물의 피나 폐기된 혈액을 부작용 없이 활용하지만 궁극적으로 사람의 피와 똑 같은 기능을 하는 혈액 개발이 과제" 라고 말했다.

현재 개발된 인공혈액들은 병균을 죽이거나(백혈구) 체내의 노폐물을 실어나르는 등의 기능을 할 수 없다.

또 고혈압을 유발하고 몸 안에서 수명이 정상적인 피의 1백분의 1 정도에 그친다는 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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