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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갚으라” 야쿠자 협박에 인간 샌드백 된 영화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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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영화 ‘컷’에서 세상에 절망하는 독립영화감독으로 나오는 일본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

영화 ‘컷(CUT)’은 도발을 넘어서 선동에 가깝다. 그렇다고 특정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선동하는 것은 영화에 대한 사랑이다. 거대자본과 멀티플렉스에 ‘포위’돼 점점 말라가고 하고 있는 예술영화에 대한 애정을 호소한다. 그 방법이 폭력적이고 섬뜩하기에, 때론 광기(狂氣)로 느껴질 정도다.

 ‘컷’은 독립영화계의 거장인 이란의 아미르 나데리 감독(66)이 일본에서 일본 배우들과 함께 찍었다. 나데리 감독은 ‘하모니카’(1974), ‘달리는 아이들’(1986) 등을 만든 뒤 영화 창작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 ‘1,2,3,4 맨해튼’(1993) 등의 독립영화를 만들어왔다. 메시지를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게 담아내는 편이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훨씬 더 직설적이다. 직접 길거리에 나서 메가폰을 들고 연설하듯 영화에 대한 사랑을 설파한다.

 그래서 가두연설을 하고 유인물을 뿌리며 거대 영화자본의 폭력성을 규탄하는 주인공 슈지(니시지마 히데토시)는 그의 분신처럼 느껴진다. 슈지는 영화에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바친 독립영화 감독이다. 형이 빌려준 돈으로 영화를 만들고, 자택 옥상에서 불법으로 명작영화 상영회를 연다. 상영회에 갑자기 야쿠자(일본 조직폭력배)가 들이닥쳐 죽은 형의 빚을 대신 갚으라고 협박한다. 형이 빌려준 돈은 사실 야쿠자로부터 빌린 것이었다. 빚은 1200만엔(약 1억7000만원). 2주 내에 빚을 갚으라는 야쿠자의 재촉에 슈지는 인간 샌드백이 되기로 결심한다. 야쿠자들을 상대로 매를 맞는 대신 주먹 한 대당 1만엔(약 15만원)을 받기로 한다.

 그는 속죄의 의미로 형이 죽은 화장실에서 맞고 또 맞는다. 야쿠자의 펀치를 맞을 때마다 사랑하는 영화 1편씩을 떠올리며 고통을 참아낸다. 마치 수도자의 고행처럼 다가온다. 그에게 영화는 신앙이자 삶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 100대의 펀치를 연속으로 받아낼 때 그를 지탱하는 힘은 100편의 영화다. 슈지는 구로사와 아키라·오손 웰즈·로베르 브레송 등 거장감독들의 영화 100편의 제목을 읊조리며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참아낸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한국영화로선 유일하게 리스트에 올랐다. 눈이 안 떠질 정도로 퉁퉁 부은 얼굴, 만신창이가 돼가는 그의 몸은 오늘날 예술영화의 현주소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뭇매를 맞던 슈지가 청각을 잃는 순간의 갑작스런 정적은 역설적이게도 커다란 함성으로 가슴을 파고든다. “진정한 예술이자 오락이었던 영화를 쓰레기 상업영화만 찍어내는 놈들로부터 되찾아오자”는 슈지의 가두연설은 감독의 절규이기도 하다. 영화를 소일거리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감독의 영화 사랑은 순진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라면 이런 ‘외고집’도 필요할 터. 영화, 나아가 예술의 기본은 기성질서에 대한 저항이기에. 9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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