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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타순 잘 짠 감독은 김성근·로이스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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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010년 프로야구에서 가장 효율적인 타순을 구성한 팀은 김성근 감독이 이끈 SK 와이번즈와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롯데 자이언츠였다. SK는 페넌트레이스를 1위로 마친 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롯데는 8개 구단 중 가장 높은 득점력을 과시하며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이 같은 결론을 내린 사람은 장영재(38)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다. 지난해 장 교수가 이끈 KAIST 연구팀은 ‘마르코프 체인을 이용한 한국프로야구 분석 및 최적 타순 계산을 위한 모델 연구’라는 프로젝트에서 “2010년 SK와 롯데가 가장 높은 득점 효율을 보인 타순을 구성했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대한산업공학회가 주최한 대학생 프로젝트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장 교수는 2010년 베스트셀러인 『경영학 콘서트』를 쓴 경영과학 전문가다. 그는 왜 야구에서 ‘최적 타순’을 연구했을까. 장 교수의 메사추세츠공과대(MIT)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어떤 생산 전략을 짜야 하는가’였다. 야구의 타순도 생산 공정이다. 거포 이대호가 4번을 치느냐, 7번을 치느냐에 따라 생산량, 즉 득점은 달라질 수 있다.

 타순 평가를 위해 장 교수 팀은 2010년 팀당 각 타순에 가장 많이 출전한 선수 9명을 뽑은 뒤 확률 이론인 마르코프 체인 모델을 이용해 기대 득점을 구했다. 2010년 SK에선 정근우가 1번, 박재상이 2번, 김재현이 3번 타순에 가장 많이 기용됐다. 이렇게 1번부터 9번까지 가장 많이 기용된 선수로 짠 ‘타순’의 기대 득점은 경기당 5.75점이었다. 그 뒤 이 9명의 선수로 조합 가능한 타순 36만2880개(9!)의 기대 득점을 모두 구했다. 그랬더니 SK의 타순은 36만2880개 타순에서 5만1674번째로 높은 점수가 나왔다. 타순이 100개라면 1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같은 방식으로 구한 2010년 롯데 타순의 기대 득점은 15위였다. 반면 다른 6개 구단의 타순은 45위(KIA)~84위(삼성) 사이에 있었다. 삼성 타순이 가장 비효율적이었고, 롯데와 SK를 제외한 구단은 더 많은 득점을 올릴 기회를 타순 구성 때문에 잃었다는 의미다. 장 교수는 “타순에 따라 한 팀의 경기당 득점이 0.6~0.9점가량 차이가 났다. 우승을 위해 좋은 선수를 영입하는 것 못지않게 선수를 잘 배치하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가 최근 천착하는 주제는 정보통신(IT) 업계의 화두로 떠오른 ‘빅 데이터’다. 장 교수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통찰력을 얻자는 게 빅 데이터 이론”이라며 “기록의 스포츠인 야구는 빅 데이터의 패러다임과 맞아 떨어지는 종목”이라고 밝혔다. 장 교수는 스포츠에서 비즈니스 성공 모델의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최민규 기자

◆마르코프 체인(Markov Chain)=옛 소련의 수학자 안드레이 마르코프(1856~1922)가 정립한 확률 이론. 가위바위보에서 무엇을 낼 것인가는 앞서 진행된 가위바위보의 결과에만 영향을 받는다. 이처럼 어떤 행위의 결과는 바로 앞 행위의 결과에 영향을 받는다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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