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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ㅎㅎㅎ, HOHOHO 라고 썼는데 서구인은 동양 전통 족자같다고 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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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 세상이 천국과 지옥처럼 극과 극이어서 오히려 고민 없는 곳이었다면 예술가는 필요 없었겠죠.”

 1일부터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개인전 ‘스프링필드(Springfield)’를 여는 화가 문지하(39·사진)씨의 얘기다. 스프링필드는 미국 곳곳에 있는 흔한 마을 이름이다. 만화 ‘심슨 패밀리’의 무대이기도 하다.

 ‘심슨’은 미국의 현실을 꼬집는 만화다. 여기서 스프링필드는 전형적인 미국 마을, 혹은 유토피아로 나온다. 모든 이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모든 것이 최상인 이상적 장소다. 이 세상에 없는 곳, 그리고 오랜 세월 예술가들이 심취해 온 주제다.

문지하의 ‘스프링필드-나비꿈’(207×76.2㎝·부분)은 족자 형태의 그림이다. 민화를 연상시키지만, 뜯어보면 꼭 그렇지 만도 않다. [아라리오갤러리]

 그렇다면 그의 회화에 담긴 세상은, 고민은 뭘까. 미국 팝아티스트 리히텐슈타인의 만화 같은 붓자국을 그렸지만 서구 관객들은 아시아의 화가여서 서예 전통에 입각한 그림을 그리는 거라고 판단한다. 장자의 호접몽(胡蝶夢)과 연관해 등장하는 호랑나비와 오늘날 데이미언 허스트가 캔버스에 통째로 붙이는 실제 나비가 다를 건 뭔가. ‘ㅎㅎㅎㅎ’와 ‘HOHOHO’를 부적처럼 내리닫이로 적기도 했다. ‘스프링필드-나비꿈’(2010)이다.

 “미국 사람들은 이걸 동양 전통의 족자 같다고 해요. 그러나 이건 꽤 도전적입니다. 책이든 모니터든 좌에서 우로 시선을 움직이는데 익숙한 우리가 이 그림은 대체 어느 방향으로 봐야 하나 당황하게 되는 겁니다.” 트위터의 새 마크가 철새처럼 날아다니는 그림도 있다. 21세기 상징 줄임문자와 마크가 옛 화조도·문자도를 닮은 모양으로 맞춤하게 들어가 있는 ‘짬뽕의 미학’. 그게 그의 종이 그림이다.

 “우리나라의 짜장면은 중국 것과 좀 다르잖아요. 그 나라 고유의 특성이 그곳을 떠나면 다른 곳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갖죠.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미지를 통해 한 번 더 생각하도록 하고 싶었어요.”

 그는 고려대 미술교육과, 이화여대 미대 대학원을 나와 미국으로 유학 가 13년째 살고 있다. 그래도 거기서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작품으로 나타난다. 이런 식이다. “옛 서구 여성들이 즐기던 페이즐리 무늬가 서부 개척 시대의 미국에선 총잡이들의 목수건에 많이 나타났고, 요즘 한국에선 등산객들이 많이 두르죠. 그렇게 기호가 곳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게 재미 있어 수집가처럼 모으고, 작품에 모티브로 씁니다.”

 그의 작품은 스위스 투자은행 UBS 컬렉션, 아시아 소사이어티 앤 미술관, 스미소니언 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3월 11일까지. 무료. 02-723-6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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