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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곽노현식 질주는 비교육적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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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곽노현 교육감의 직무 복귀 이후 서울시교육청과 교육과학기술부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두 기관은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 대하듯 걸핏하면 충돌하고 있다. 곽 교육감이 지난달 27일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하자 교과부는 조례 무효 확인 소송 등을 대법원에 냈고, 곽 교육감이 시내 초·중·고교에 인권조례 시행을 위해 학교규칙을 개정하라고 지시하자 교과부가 맞받아치듯 학칙 개정 지시 유보를 명령했다. 인권조례의 찬반 여부를 떠나 이런 핑퐁과 같은 대응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들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혼란스럽다.

 특히 곽 교육감은 교과부에 대해 “교육 자치의 정신을 훼손한 시대착오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상급기관인 교과부는 관여하지 말고 빠지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데 그 역시 일선 학교를 상대로 학칙을 개정하라는 지시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똑같이 시대착오적이며, 비교육적이다. 학칙은 학교장이 교사·학부모·학생들의 의견을 듣고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돼 있다. 인권조례가 보장한 두발·복장 자유, 교내외 집회의 자유, 휴대전화 사용 등을 어떻게 허용하느냐를 놓고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다. 그런데도 교육청은 학교가 어서 결론을 내라는 식으로 다그치고 있으니 전교조 출신 교장마저 “인권조례에 근거한 학칙 개정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곽 교육감 스스로는 물론 주변 인사들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은 듯 급하다는 데 있다. 그러니 학교와 학생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 결정을 서둘러 내리려 한다. 한마디로 시한부 교육감의 위험천만한 일방통행식 고속주행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아무런 제지를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로 볼 때 선출직 공무원인 교육감이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 따라 확정판결 이전까지 직책을 유지하는 조항은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일반직 공무원은 형 확정 이전이라도 직위해제되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교육감의 직무 행사엔 일정한 제한이 있어야 한다.